덕후에서 성덕까지

나는 번역가다 #2

by 와룡

나는 번역가다.

문체가 딱딱하고 차가워서 슬픈 소설 번역가다.

소설 번역을 시작한 것은 학생 때였다. 사실 그건 번역이라고 할 수 없어서, 그때도 난 차마 번역한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옮긴다’는 말을 주로 썼다. 그때는 아마추어였고 내가 좋아서 내 마음대로 옮겨서 아는 사람들에게 공유했다. 그 당시만 해도 그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 그 분야를 즐기는 사람은 더욱더 드물었다. 덕분에 나는 그 분야 사람 중에 유일하게 좋아하는 소설의 원문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무슨 글을 옮기든 간에 “잘 봤다", “재미있다", “고맙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 사람들이 그러는 건 당연했다. 무보수로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서 재미있는 자료를 공유해주는데, 뭐든 다 좋게 보이는 것이 사람 마음 아닐까? 거기다 대고 글이 어떠니 번역이 어떠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이,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가 꾸준히 소설을 옮겨왔고, 지금처럼 당당하게 "나는 번역가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아는 이’의 평가를 벗어나서 ‘모르는 이'의 차가운 평가를 받아봐야 한다. 어쨌거나 나는 프로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신랄한 평가를 들었고, 그래서 내가 내놓은 결과물을 몹시 부끄러워하며 차츰차츰 재작업에 들어갔다. 비록 문체가 딱딱하고 차갑지만, 아마추어 때처럼 비문 투성이에다 단어만 바꿔놓은 듯이 쓰지는 않게 되었다 자부한다.


나같이 취미로 시작한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 사람을, 요즘에는 ‘성덕 – 성공한 덕후'라고 한다. 언젠가부터는 내 분야에도 많은 덕후가 생겨나, 오래전 내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원문을 찾아 읽고, 우리말로 옮겨서 사람들과 공유하곤 한다. 또 최근에는 웹 연재 플랫폼이 득세하면서 시장이 좋아져서 그런지, 꽤 많은 출판사가 뛰어들었고 더욱더 많은 작품이 쏟아지고 있다. 1, 2년 전만 해도 무슨 책이 나왔는지 다 파악했는데 지금은 정리해놓지 않으면 잊어버릴 만큼 많은 작품이 나왔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나야 시기와 상황이 맞아서 운 좋게 프로가 되었지만 지금 시점에 오래전 나같이 하는 사람들은 데뷔하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앞으로 더 많은 성덕이 나올 수도 있어 보인다.


아마추어가 프로로 변하는 것은 언제일까?

돈을 받지 않으면 아마추어, 받으면 프로니까 일단 번역한 작품으로 돈을 받기만 하면 그 사람은 프로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려면 반드시 얼마간 경험을 쌓아야 한다. 어떤 일에서나 경험이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다. 설령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꾸준히 하기만 했다 해도, 천번, 만번 반복되면 처음 할 때보다는 늘기 마련이다. 물론 노력을 기울이며 꾸준히 한 사람은 훨씬 더 빨리 늘 것이다.


아마추어로 있는 동안에는 노력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다. 아마추어 소설 번역가들이 왜 혼자 읽지 않고 구태여 글로 써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까? 모두가 나 같지는 않겠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사람들의 반응이 즐겁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그랬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간이 그런 자아성취감 때문에 앞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남들의 반응에만 몰두하다보면 노력을 기울일 시간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다. 아마추어 세계에서 독자는 ‘아는 사람'의 범주이고 때문의 그들의 반응은 99% 칭찬이기에 쓰기만 하면 칭찬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노력을 들여 꾸준히 고민하기보다는 빠르게 새로운 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선다. 아마추어로 일한 5년 보다 프로로 일한 1년 간이 훨씬 발전이 많은 까닭이 그때문이다. 영원히 즐겁게 취미로 번역을 하겠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능한 빨리 프로로 데뷔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그 글을 보는 독자들에게도 이득이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아마추어 세계에도 한 가지만 꾸준하게 반복 번역하면서 질을 올리는 노력형과 대충 해도 정말 흠잡없이 없이 잘 하는 천재형이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서는 대부분의 경우를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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