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번역가다 #1
나는 번역가다.
학생 때의 꿈은 작가였다. 정확히는 셰익스피어 같은 극작가였다. 덕분에 학예회 연극, 상황극 같은 것을 할 때면 극본을 내가 도맡았다. 어쩌면 내가 손들고 하겠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학교 일 말고도 개인적으로 극본이니 소설이니 수필이니를 마구잡이로 썼고, 무슨 자신감인지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곤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한 번 보시고는, 나는 소설가보다 야당 의원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기억이 난다. 그때는 어려서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한참 후에야 내 글이 비판적이고, 또 차가웠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나 영화감독, 배우, 대중들과 접점을 갖고 사는 수많은 이들은 반드시 넘어야 하는 관문이 있다. 바로 대중의 평가라는 것이다. 소설을 주로 옮기는 나 같은 번역가도 그 관문을 지나기 마련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익명으로 쏟아붓는 날 선 말도 무섭지만, ‘아는 사람'이 해주는 칭찬도 무섭기는 다름없다.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다, 잘 썼다, 멋지다고 한다. 개중에 좋게 말하면 용기 있는 사람, 나쁘게 말하면 눈치 없는 사람이 이따금 솔직한 말을 해주는 정도다. 나는 운 좋게 그런 사람을 한 번 만났고, 사실 그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완전히 대중 앞에 발가벗겨지듯 섰을 때, ‘익명'의 독자들이 내 글을 보고 평한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글이 딱딱해요. 글이 차가워요.
작가를 꿈꾸었던 만큼 소설을 제법 읽었는데, 내가 좋아한 소설은 주로 역사, 영웅, 추리를 다룬 것들이었다. 다정다감한 가족 소설이나 치유, 사랑을 다룬 소설은 거의 보지 않았다. 연극도 즐겼지만, 부조리극을 좋아했지 코믹극은 시도도 하지 않았다. 글이란 그 사람의 생활 환경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걸까. 내 글이 딱딱하고 차가울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일 터다.
문제는, 당시 내가 맡은 번역이 로맨스 소설이었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로맨스 소설을 읽고 딱딱하게 느꼈다는 것은, 나에게는 아프지만 반박할 수 없는 비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로맨스 웹 소설을 자주 읽었다. 아, 이게 로맨스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만, 내가 둔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중 무엇이 부드러운 문체이고 무엇이 딱딱한 문체인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고민하는 나를 보고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독자들은 그저 남녀 주인공이 알콩달콩 달콤하게 대사를 주고받는 자체를 부드럽게 느끼는 게 아닐까? 너는 그런 대사를 써본 적이(+해본 적도) 없으니 그 느낌을 못 살린 것이 아닐까? 그것이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로 로맨스 소설의 대사를 옮길 때는 늘 ‘부드럽게 쓰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
오랜 세월 이 일을 계속하면서, 모르는 이에게 평가를 듣고, 평가를 넘어서 비난을 들었다. 고맙게도 칭찬해 주는 독자도 있었지만, 참 이상하게도 백 번의 칭찬보다 한 번의 비난이 더욱더 마음에 남았다. 그런 비난에 상처받고 그 비난이 옳고 내가 틀렸다고 자책하며 이리저리 흔들리기를 한동안. 누구나 그런 건지 몰라도, 어느 순간 나는 그 관문, 대중의 평가라는 관문을 지나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들의 소리에 마구잡이로 흔들리면 결국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 오히려 단단히 중심을 잡고 서서 그 쏟아지는 소리를 – 그것이 비난이든 칭찬이든 – 내 방식으로 흡수하는 쪽이 오래 갈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