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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A Jan 06. 2024

메모장으로 숨어든 이야기

일단 쓰자, 근데 어떤 걸 쓰지?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보냈던 몇 달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런 눈치를 주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왜인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아마도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 바로 이 브런치라는 곳이 저에게 다가오는 의미를 새삼 상기했기 때문입니다. 

때는 작년 초.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을 새해 목표로 두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지원했고 운이 좋게도 한 번에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매우 기뻤죠.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하찮은 능력으로 운이 좋게 되어버린 현실에 시작된 자기 비하는 아무런 글을 쓰지 못하게 했답니다. 그 모습에 저의 사랑스러운 친구는 장문의 연락을 보내왔죠. 능력이 있기에 인정을 받는 것이고, 그 인정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는 격려였죠. 그 말에 힘입어 몇 개의 글을 썼고 지속가능한 아이디어를 몇 개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네요. 누군가 내 글을 본다는 건 때로 엄청난 공포이기도 합니다. 왜일까 생각해 보면 대답은 단순해요. 쪽팔릴 걱정 때문이죠. 저는 늘 인정받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요. 잘한다는 칭찬만 듣고 싶었고 어쩌다 실수를 하거나 지적을 당하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어요. 영원한 실패자가 된 기분이 들었고, 100을 잘해도 1의 실수에 목을 매는 사람이었거든요.  늘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쪽팔린 모습은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죠. 그러면, 자연스레 칭찬받을 수 있는 것만 하고 싶어 집니다. 못하는 것, 약한 부분은 숨기려 들죠. 당연한 사실도 잊게 됩니다. 가령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 실수도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쓰지도 못할 멍청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 같은 사실들 말이에요. 특히,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선보인다는 건 꽤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당연하죠. 완벽한 글을 쓸 수 없으면서 완벽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눅 들어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쓰고 싶은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메모장으로 숨어들었어요. 그곳에선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었답니다. 당연하죠. 나만 볼 수 있으니까요. 언제는 소설의 도입부를 썼고, 언제는 스스로의 의지를 다졌어요. 또 어떤 날엔 읽고 있던 책에서 감명 깊었던 구절들을 옮겨 적기도 했네요. 그렇게 하나둘씩 쌓인 메모들이 수백 개가 되었어요. 그리고 어느 날, 제일 처음 적힌 메모부터 찬찬히 읽어 올라왔고 제일 최근의 메모에 도달했을 때 생각했어요. 아, 이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쓸 말을 고르지 못하겠다면 이미 쓴 이야기들을 꺼내보자! 그래서 벌거벗은 마음으로 몇 개 꺼내 놓아 보려 합니다. 비록 쪽팔리더라도 말이죠. 그리고 당연한 사실들을 자꾸 떠올리려고요. 메모장에 더 이상 이야기가 숨지 않는 날이 올 때까지 말이에요. 그러니 지켜봐 주세요. 천천히 시작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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