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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Jan 30. 2021

뤼팽, 셜록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뤼팽'을 보고 쓰다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한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스포일러로 인해 넷플릭스에 있는 드라마 시리즈를 먼저 시청하신 뒤에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탐정 소설의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매력적인 주인공의 유무일 것이다. 절대 해결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사건을 뛰어난 관찰력을 통해 단서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진범을 밝혀내는 주인공은 독자들이 소설을 계속 읽어나가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당장 셜록 홈스를 봐도 우리는 탐정 소설 속 주인공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지니는지 알 수 있다. 셜록 홈스의 아버지인 코난 도일이 시리즈 안에서 그를 죽였을 때, 모든 영국인들이 코난 도일에게 청원을 보내고 어머니마저도 셜록을 왜 죽였냐는 질문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처럼 셜록 홈스는 반사회적 히어로라는 새로운 기믹을 형성하고 후대에 나타난 많은 탐정/범죄물, 펄프 픽션 류에 영향을 주었다. 탐정이라는 직업에 '정의'라는 키워드까지 선물했음은 덤이다.



한편 뤼팽은 셜록 홈스와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인다. 일단 그는 탐정이 아닌 범죄자다. 괴도 뤼팽에서 '괴도(怪盗)'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괴이한 도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뤼팽은 탐정과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상극 그 자체이다. 이런 캐릭터의 매력점은 바로 형사나 탐정이 무슨 짓을 해도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매끄럽고 우아한 지에 따라서 매력의 정도가 달라진다. 원작 소설 속 뤼팽의 설정은 '미남에 신사적이고, 좀 까칠하긴 하지만 똑똑하고 카리스마 있으며 싸움도 잘하는', 소위 '사기캐'였고, 그래서 책 속에서 나오는 여자도 작품마다 달라질 정도로 바람둥이였다. 이렇다 보니 뤼팽의 작가는 셜록 홈스에서 철자만 바꾼 '헐록 숌즈'와의 대결을 작품 속에서 그리는 등, 그 흔한 '사자 VS 호랑이' 류의 궁금증을 대중들로부터 이끌어내려고 하기도 했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2차 창작물의 흥행 여부는 작품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와 충성심에 달려있다. 원래부터 인기 소설이었던 해리 포터 시리즈는 영화로도 큰 성공을 거두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막대한 흥행 수입을 거둘 수 있었고, 셜록 홈스 역시 BBC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주연으로 한 드라마로 재탄생하여 전 세계의 셜로키언뿐만 아니라 그를 모르던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의 흥행은 소설 속 인물들이 실사 버전과 얼마나 흡사한 지에 달려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해리포터의 경우, 감독은 주인공인 해리, 헤르미온느, 론의 성격과 가장 흡사한 아역 배우 셋을 캐스팅하여 관객들이 스토리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또 드라마 셜록 홈스의 주인공은 원작 속 셜록의 반사회적 면모를 '고지능의 소시오패스 괴짜'라는 설정과 함께 현대적인 감각을 덧붙여 시대의 차이를 극복하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나온 넷플릭스 뤼팽 시리즈가 탐정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괴도 특유의 자유로우면서도 신사적이고, 어떤 수를 써도 잡히지 않는 만능 사기 캐릭터이자 바람둥이인 뤼팽의 매력을 어떻게 풀어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리즈 5편을 다 보고 난 이후에는 어느 정도 아쉬움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시리즈는 셜록 시리즈처럼 뤼팽을 현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닌, 주인공 '아산 디오프'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릴 적부터 읽었던 소설 '아르센 뤼팽'을 모방하면서 활동하는 내용이다. 아산의 아버지는 펠레그리니라는 프랑스 부자의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지만, 목걸이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가 결국 자살하게 된다. 그리고 어린 아산은 어른이 되어 소설에서 읽은 뤼팽의 기법을 이용해 아버지의 누명을 풀고 펠레그리니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아산 디오프는 턱시도보다는 후드 티셔츠가 더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뤼팽 특유의 자유로운 변장은 그가 사건 현장을 탈출하는 데 필요한 기능이었지만, 정작 시청자들이 기대한 화려하고 자유분방하며 바람둥이인 뤼팽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아산은 어렸을 적 학교에서 만난 클레르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사는 등의 평범한 가장의 모습을 보였다. 또 원작 속 뤼팽은 몇십 명의 충성스러운 부하를 거느리고 다니지만 아산 디오프는 목걸이의 진위 여부를 파악할 줄 아는 골동품점 친구 한 명만 있을 뿐이고, 오히려 목걸이를 훔칠 때 같이 일했던 동료와는 서로 배신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명탐정 코난에 나오는 괴도스러운 이미지를 아산 디오프에게 기대했다면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드라마도 초반의 루브르 박물관에서만 스케일이 크게 나올 뿐, 그 후의 장면들은 크게 화려하지 않다. 스토리 자체도 5편밖에 되지 않는 시즌 1의 특성상 너무 속도가 빠르고 호흡이 짧아서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이런 점은 다음 시즌이 나오면 어느 정도 개선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지만, 만약 드라마 '셜록 홈스' 급의 흥행을 제작사가 바란다면 좀 더 많은 투자를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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