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해적 왕국의황금시대'를보고 쓰다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한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이제는 잭 스패로우 선장 그 자체가 돼버린 배우 조니 뎁을 필두로, 매 편을 내놓을 때마다 대박을 친 디즈니의 '캐리비안의 해적'은 제목 그대로 1720년대 카리브해에서 활동하던 해적을 모티브로 만든 픽션 시리즈다. 사실 '해적'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영국과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왕국의 전쟁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였기에 매력적인 콘텐츠 소재였지만, 이 시리즈 이전에 제작된 타 영화사의 각종 해적물은 계속된 실패를 거듭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디즈니에게도 '캐리비안의 해적' 제작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잭 스패로우 선장이 전 세계를 돌며 가져온 엄청난 달러는, 이후 디즈니가 15세 이상 관람가 작품 배급에 가능성을 보고 배급 전략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줬다. 2000년 대 해리 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이 시리즈는 자그마치 극장 수입으로만 5편을 합쳐 45억 244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미국뿐만 아니라 해적으로 유명했던 영국과 일본에서도 팬덤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블랙펄 호를 타고 바다를 누비며 각종 괴수와 싸우고 다른 해적들을 골탕 먹이는 잭 스패로우 선장은 어떤 인물을 모티브 삼아 등장한 캐릭터일까?
이번에 소개할 다큐멘터리 '해적 왕국의 황금시대'는 바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난 이후, 사략선을 몰고 다니던 선원들이 해적으로 변신해서 활동하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사실 이 사략선과 선원들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동맹, 그리고 이를 견제하기 위한 영국 및 다른 유럽의 왕국들과의 전쟁에서 태어난 존재들이었다. 스페인이 맺은 동맹은 다른 유럽국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고, 이를 저지하는 과정 속에서 영국 왕실은 해군력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상선을 공격해도 된다'는 허가증을 내주기 시작하면서 사략선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략선들은 상선에서 얻은 전리품의 절반을 왕실에게 떼주고 나머지를 취하는 식으로 이득을 보기 시작했다. 절반이나 떼주는 것이니 손해가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사략선 활동 이전에 벌었던 월급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으니 선원들에게는 오히려 큰 이득이었다.
그러나 1714년에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에서 강화 조약이 체결된 이후, 이들은 모두 실직자가 되었다. 영국 왕실은 아무리 전쟁으로 스페인이 크게 약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강력한 해군력을 자랑하는 스페인을 만만히 볼 수 없었고, 그래서 사략선들이 상선을 약탈하는 것을 계속 용인한다면 영국으로서도 오히려 전쟁을 자초하는 꼴이기 때문에 결국 사략선들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항구에서 배를 묶어두고 술만 마시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사략선 선장이었던 벤저민 호니골드 역시 그들과 같은 신세였다. 마찬가지로 헨리 제닝스라는 선장 역시 일개 선원이었던 호니골드와는 다르게 버뮤다와 자메이카에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금수저였지만, 똑같이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 터진다. 금과 은을 잔뜩 실고 스페인으로 가던 상선 함대가 허리케인에 휩쓸려 그만 침몰하고 만 것이다. 오늘날의 가치로 거의 수억 달러에 달하는 보물들이 모두 바다에 빠졌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고, 이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호니골드와 헨리 제닝스를 비롯한 각종 인물들이 모두 몰려들기 시작한다.
사실 호니골드는 카리브해의 수많은 작은 섬들 중 하나인 '나소'라는 곳에서 부하들과 함께 정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상선의 보물들을 공평하게 나누고, 인종에 따른 차별 없이 서로를 평등하게 대했으며,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결정은 투표로 진행하는 등 오늘날의 공화국의 형태를 띠는 진보적인 그룹을 형성했다. 심지어 선장의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선원들이 판단하면, 그들은 투표로 자신의 선장을 내쫓고 새로운 리더를 뽑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호니골드를 비롯한 많은 선원들은 노예선을 습격해서 보물을 얻고, 동시에 자신들을 따르고자 하는 흑인 노예를 동료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아프리카 토착민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팔아 이득을 취하는 스페인과는 달리 해적들은 나이나 피부색에 상관없이 능력만 있으면 중요한 직책을 맡겼는데, 오늘날까지 유명한 해적으로 알려져 있는 블랙 시저 선장 역시 흑인 노예 출신이었다.
보물선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검은 수염으로 알려져 있는 에드워드 티치와 전직 해군 출신의 새뮤얼 밸러미, 잔혹하기로 악명 높았던 찰스 베인, 그리고 역사에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는 여자 해적 앤 보니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처음에는 각각 호니골드와 헨리 제닝스의 편에 서서 각자의 목표를 위해 일했던 해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배를 가지고 독립하여 모두 나름대로 이름을 날렸던 해적들이다. 사연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만, 왕실을 등지고 오로지 돈과 각자의 목표를 위해 수배자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 바다를 누비는 해적을 업으로 삼는 것은 보통 배짱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새뮤얼 밸러미는 보잘것없는 자신과 사랑에 빠진 여자를 위해 부자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해적이 된 인물이다. 해군 출신이라는 배경 덕분에 풍부한 선원 경험을 쌓았던 그는 순식간에 무시할 수 없는 해적으로 성장했고, 자신만을 기다리는 여자를 위한 돈도 그만큼 모을 수 있었다.
그의 동료였던 에드워드 티치 역시 뛰어난 해적 중 한 명으로서, 뛰어난 리더십으로 선원들을 지휘하며 상선을 하나둘씩 점령하며 악명을 떨치던 사람이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검은색 수염과 화려한 스타일, 그리고 온몸에 두른 광기로 상선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던 에드워드 티치는 호니골드에게서 독립한 이후 그에 못지않은 해적으로 성장해서 영국 본토의 여러 신문에 오르내렸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호니골드와 함께 했던 나소 출신의 해적이 상선의 선원들을 죽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상선에 대포를 쏘고, 배에 올라 선원을 제압하고 보물들을 자신들의 배에 실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일부러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호니골드가 영국 상선을 습격하길 꺼려했고, 한 번 선장의 자리에서 쫓겨난 이후 나중에 나소로 돌아왔을 때에도 겨우 영국 상선 공격을 허락했으나, 이유 없는 살생은 여전히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헨리 제닝스의 수하였던 찰스 베인은 나소에서 독립한 이후 상선을 습격할 때, 잔인한 수법으로 그 배의 선원이나 선장을 살해했기에 더 악명이 높았다.
이처럼 해적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은 각자 다른 스타일로 카리브해에서 이름을 떨쳤다. 혼란스러운 전쟁 속에서 사략선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다가, 전쟁이 끝나자 해적으로 변모하여 또다시 영국과 스페인 가릴 것 없이 상선을 공격하여 보물을 손에 쥐었던 이들의 연대기는 눈물겹다. 어쩌면 신분 상승을 꿈꾸는 보통 사람들의 기회는 공정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알았기에 그들은 위험하지만 푸른 바다로 뛰어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역사는 미국의 탄생보다도 몇십 년 전이나 이른 시기에 시작된 해적 공화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투표로 자신의 선장을 내쫓을 수도 있고, 인종을 차별하지 않으며, 모두가 능력에 걸맞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해적의 유토피아가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