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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by 형산



단풍이 든다는 표현은 잘못됐다.

단풍은 드러난다.

봄부터 여름까지 일을 하느라 바빴던

페르소나, 엽록소를 벗어버리고 제 색을 찾는 것이니.

모두 푸르른 줄 알았지만 그들은 노랗거나 붉은 존재였다.

혁명을 노래하던 청춘의 시절엔 알 수 없었다.

모두 하나의 빛깔로 서있었으니.

나이가 좀 드니 알겠다.

어떤 친구는 지독한 보수주의자였고

다른 친구는 예상 밖으로 진보주의자였다.

어느날 단풍의 산을 보며

가을이 오고 세월이 흘렀음에 놀라듯

제 색깔을 드러내는 중년의 풍경에 놀라곤 한다.

원래 사람이 그리 울긋불긋한 것이었구나.

그러니 뭐 그리 울뚝불뚝할 일이 있으랴.

그저 곱게 제 색을 드러내기만 바랄 뿐.

다른 빛깔을 용납하며 색의 향연을 이루고

다시 푸르를 다음 세대를 위해 아름답게 지는 일에 골몰할 뿐.

저 산도 나도, 단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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