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면서 아쉬운 점을 선임에게 용기 내어 말했다.
“팀원이 더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입사 일 년도 안 된 조무래기가 이런 피드백을 하는 게 듣기 불편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선임은 지적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당시 디자인팀은 10명 내외였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백인 여성이었다. 다양한 팀원들과 일할 때 느껴지는 특별한 시너지가 그리웠다. 우리 팀에 애정을 가지는 만큼, 또 선임이 이런 주제에 귀를 기울일 사람인 걸 알았기에 고민 끝에 꺼낸 말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좋은 인재를 채용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회사는 작았고 디자이너는 나 혼자였으니까. 면접도 후보를 평가하는 시간이라기보다 우리 회사에 오고 싶도록 PR 하는데 집중되어 있었죠. 상황이 그렇다 보니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물론 이제 그런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선임과 의논을 하던 중 워크숍을 열어 팀원들과 다 같이 브레인스톰 해보자고 제안했다. 선임도 흔쾌히 독려해주었다.
1. 우리가 잘하는 것 (오렌지색 포스트잇)
2. 우리가 이미 잘하는 것과 다른 역량 (파란색 포스트잇)
10분 동안 각자 1번, 2번 내용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적은 포스트잇을 보드에 붙여 주제별로 추합 하며 다 같이 대화를 나눴다. 그 후에는 한 명당 3개의 스티커를 나눠주고 2번 포스트잇에 적힌 역량 중 가장 원하는 사항에 스티커를 붙여 투표했다.
"우리는 거절을 잘 못해" We are not good at saying 'No'
"난 카피를 쓰는 게 정말 어려워" I often struggle with copywriting
우리는 왜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들을 뽑게 되었을까? 디자이너는 왜 다른 직군보다 더 협조적이어야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는가? 등등 팀이 가지고 있는 약점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토론했다. 매일매일 업무를 하다 보면 주변 팀원들이 가진 강점이 유독 돋보이고 계속해서 비슷한 강점을 가진 사람들을 뽑게 된다. 팀원이 10명을 넘어가는 과도기에 정형화된 인재상이 생기기 시작한 건 아닐지, 새로운 역량을 가진 사람을 영입함으로써 우리를 더 완전한 팀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무엇일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후보자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합격 결정을 내리는데 용이하도록 워크숍에서 의논한 내용을 토대로 '스코어 시트'를 만들었다. 꼭 필요한 역량에는 1점을, 워크숍에서 2번 포스트잇에 적었던 역량에는 0.2~0.5점가량 당시에 뽑는 직군에 맞게 가산점을 매겼다. '새로운 시각 또는 배경'도 가산점을 주는 역량으로 추가했다.
스코어 시트가 생기면서 다른 부분들의 약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희망하는 역량을 채용공고에 이해하기 쉽게 게시하고 있는지, 현재 면접 구성이 각 역량을 평가하기에 적절한 형태인지도 분석할 수 있었다. 잘 다듬어진 포트폴리오로는 후보자가 실제로 UX/UI 디자인에 얼마나 능숙한지 검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어서 후보자가 추가로 제출할 수 있는 디자인 크리틱 과제를 프로세스에 추가했다. 데이터 포인트를 추가해 채용담당자의 결정을 돕도록 구성하되, 후보자에게 무리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과제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문서는 팀원들과 공유해서 다 같이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완성된 스코어 시트와 수정된 채용 절차는 HR에게 전달했다. 채용이 끝날 때마다 프로세스에서 아쉽거나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완하고 이것저것 실험해보며 채용 절차를 lean 하게 발전시켰다.
서류, 1차, 2차, 합격까지 각 절차별로 통과한 지원자의 수와 다양성을 모니터링하는 사람이 없었다. 통계의 직접적인 쓰임이 없더라도 지속적으로 집계하고 팀원들과 공유해서 함께 책임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HR과 협의해 지원자들의 성별과 인종을 집계하기 시작했다.
많은 미국 회사들이 매년 Diversity and Inclusion Report를 발행한다. 작년 대비 어떤 사람들을 더 많이 채용했는지, 경영진의 다양성 구성은 어떠한지 등등 사내 직원들 뿐만 아니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회사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올린다.
기업의 '다양성 성적표'는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마케팅 수단이 된다. 경영진에게도 각 부서별로 다양성 목표를 세우고 인사팀을 리드하기 위해 꼭 필요한 통계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리포트는 성별과 인종에만 한정되어 있다. 아쉬운 시작이지만 출신 배경, 학교, 성적 지향, 종교, 나이, 장애 등을 포함한 더 구체적인 통계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워크숍을 연 후 여러 지원자를 만났고 몇 명은 채용으로 이어졌다. 팀은 무럭무럭 컸고 채용은 계속 진행 중이다. 얼마 전 나를 지지해줬던 선임은 지원자의 최소 50%를 Person of Color(유색인종)로 유치하는 목표를 팀에게 공지했다. Black Lives Matter운동에도 이목이 집중되면서 다양성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 얼마전 나스닥은 상장기업 이사진의 다양성 의무화를 선언했다. 다양성을 nice to have로 여길 날도 얼마 남지 않아보인다.
Black Lives Matter운동이 한창일 때 복잡한 마음으로 인터넷을 순회하다 Where are the Black designers?(흑인 디자이너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토크를 보게 되었다. 왜 디자인 커뮤니티, 특히 테크 업계의 디자인 커뮤니티는 백인 디자이너들의 리그처럼 되어버렸을까? 디자이너 Maurice Cherry는 이런 구조적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 멘토쉽과 교육의 중요성이 제일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모든 사람이 살면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노출되지 않는다. 디자인이 취미가 아니라 커리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더 많은 사람이 꿈꿀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지역 중고등학교와 소외계층이 속한 공동체에서 적극적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다양성에 대해 고민해보면 채용 절차 곳곳에 내재된 편견들이 보인다.
지원자가 꼭 디자인 관련 학위를 소지해야 할까?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유로 (또는 중도에 직업을 전환해서) 관련 학위는 없지만 좋은 포트폴리오를 쌓은 지원자와는 어떻게 비교해야 할까?
경력단절을 겪었거나 회사 내부 사정때문에 최근 눈에 띄는 작업을 하지 못한 지원자의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디자이너'라는 직군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장애가 있는 흑인 여성 디자이너가 직무에 집중하기 위해 필요한 여건은 무엇일까?
이렇게 차별과 편견을 집는 과정이 불편하고 부끄러웠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던 권리를 특권으로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서로 비슷하게 생기고, 비슷하게 말하며,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언뜻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영감을 받을 기회가 아깝지는 않은가. 조직의 입장에서 다양한 임원진과 인재로 구성된 조직이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더 높은 실적과 창의적인 결과물을 산출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매우 합리적인 투자아닌가.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영입하는 법을 고민해보면 좋겠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의 모습과 산업을 주도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닮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