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by 문사모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요한일서 3:1)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


얼마 전, <킹 오브 킹스>라는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보았습니다. 수많은 장면들이 깊은 감동을 주었지만, 유독 제 눈물샘을 자극한 장면은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는 장면이었습니다. 신 중의 신이신 예수님께서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그 낮은 자리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을 더 깊이 울린 것은 그다음 장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며, 하늘로부터 이런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 내 기뻐하는 자라” (마태복음 3:17)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주신 첫 메시지는 “힘을 내라”도 “권능을 받으라”도 아닌, 단 하나의 정체성 선언이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야.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기뻐해.”


그 장면이 제 가슴 깊은 곳에 박힌 이유는,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이 ‘자녀 됨’의 정체성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기에, 그 어떤 거절도, 조롱도, 고난도 감당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리고 저도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여기고 있지?’



자녀가 아닌 고아처럼


이 글의 첫 장을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로 시작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정체성이야말로, 제가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제가 다녔던 선교원은 매달 생일인 친구들의 부모님을 초대해 함께 생일파티를 열곤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불화로 조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저는 엄마 대신 할머니를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생일상 앞에 앉아있던 날, 7살밖에 되지 않았던 제 마음에는 서러움이 맴돌았습니다. ‘다른 애들처럼 엄마가 왔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마음은 ‘아픈 할머니가 대신 와주셨는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라는 죄책감으로 이어졌고, 결국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버텼습니다. 온전한 ‘내 편’이 없다는 사실은, 어린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외로움이었습니다.


가정의 깨어짐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닙니다. 제게는 ‘나는 축복받은 자녀야’라는 정체성을 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늘 불안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하나님은 공정하시지만 따뜻하진 않았습니다. 그분은 무서운 선생님 같았고, 절대적인 왕 같았습니다. 한 번도 ‘아버지’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안에서도 늘 눈치를 보았습니다. ‘지금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는 건 아닐까?’ 눈에 보이는 일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끊임없이 착한 척, 모범적인 척, 인정받는 척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 뒤에는 깊은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비슷한 공허 속에 살아갑니다. 깨어진 가정, 상처 입은 관계, 어릴 적부터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경험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진리를 공허한 말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하지만 복음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고, 그 사실은 현실을 뛰어넘는 진리라고.



고아가 아닌 자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우리는 종종 ‘영적 고아’처럼 살아갑니다. 삶의 무게는 온전히 내 몫이라 여기고, 누구에게 기대는 것을 나약함이라 오해합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마음 한구석엔 늘 말 못 할 불안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누구에게도 쉽게 “이거 해줘!” “이거 갖고 싶어!”라는 말을 잘 못했습니다. 가난한 형편에 병든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하면, 무엇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죄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도 “물 한 잔 주세요”라는 말조차 조심스러웠습니다. 이런 생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니, 제 마음속엔 ‘나는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존재일지도 몰라’라는 왜곡된 믿음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랑을 요구할 수 있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무너졌을 때 기대서 울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자녀의 특권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육체의 부모는 사람이기에 한계가 있지만, 하늘의 아버지는 완전하십니다. 그분은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은혜로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선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아버지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딸이다.
내가 너를 지었고, 너를 아끼며,
너의 인생을 이끌 것이다.
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받는 사람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그분의 품을 다시 신뢰하고, 기꺼이 안기는 것. 정체성은 그 품 안에서 회복됩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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