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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Sep 13. 2023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했을 때 그는 얼마나 기뻤을까?

영화 <오펜하이머>로 본 핵연료 발전의 역사와 원자력 이야기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는 세계 2차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괄 과학자 율리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다룬다. 원자폭탄의 과학적 배경과 개발 과정,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오펜하이머의 개인적인 논란까지 다룬 이 영화는 한국에서 8월 15일 광복절에 개봉하며 세계 2차 대전 종료의 원인이 된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사건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영화는 주인공의 대학원 시절에서부터 시작한다. 물리학에 재능을 보여 박사과정에 진학하였으나 영국 케임브리지의 실험실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젊은 과학자 오펜하이머는 독일로 연구실을 옮겨 박사과정을 마친 후 고향인 미국에서 학생들에게 양자 역할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윽고 양자역학은 눈부산 발전을 거듭하여 1938년 독일은 인위적으로 원자핵을 분열시키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핵분열 현상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방출할 뿐 아니라 연쇄적인 핵반응까지도 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한 당대 과학자들은 즉시 이 현상이 신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직감한다. 이후 1939년 독일이 세계 제 2차대전을 일으키면서 핵무기 개발에 대한 위기감은 더욱 고조된다.


오펜하이머는 미군의 요청으로 당시 적국인 나치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착수한다.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그는 프로젝트 내내 과학자인 동시에 군인이자 행정가를 겸하며 연구 개발과 프로젝트 진행 관련 당국 보고, 팀 매니지먼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후 원자폭탄과 관련한 여러 과학자들의 상반된 의견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의 과학자들은 1945년 7월 핵폭발 실험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 성공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및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다룬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영상으로 각색하며 한 과학자의 일생을 담는 데 주력한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관객은 역설적으로 핵무기와 같은 인류 문명의 결정적인 기술이 한 사람의 뛰어난 두뇌가 아닌 여러 시스템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하는 맥락을 관찰하게 된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원자핵의 분열이라는 과학적 사실로부터 출발하였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흐름이 있었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핵실험 과정에서 수많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험에 성공한다. 그는 원자폭탄 개발을 통해 전쟁 영웅으로 우뚝 서지만, 이후 냉전 시대가 시작되면서 과거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전력이 드러나 한순간 반동분자로 의심받기도 한다. 사적인 관계나 연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 상황을 이유로 심문받는 영화 속 장면을 보는 관객은 진실이 반드시 절대적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시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음을 체감한다. 결국 과학과 기술 모두 인간과 사회 안에서 작동하기에 기술의 발전과 유지 역시 인간의 선택에 의해 변화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기술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발전한다.  


2차대전 종전 이후 국제 사회는 원자력을 무기가 아닌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안하기 시작한다. Atom for Peace - 미국을 필두로 전쟁을 위함이 아닌 평화를 위한 원자력 발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평화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원자력 기술의 발전은 냉전으로 인해 가속화된다. 미국과 러시아는 종전 이후 경쟁적으로 원자력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는 데 성공한다. 강대국들은 원자력 발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사용 후 핵연료가 원자폭탄 연구개발에 사용될 것을 우려하여 핵 보유국을 제외한 국가의 핵 기술 개발을 감독하겠노라 선언하기도 한다. 그 유명한 NPT, Non proliferation Treaty of Nuclear Weapons이다. 이후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은 군사적 갈등과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굵직한 고민거리를 남기며 기후 변화 해결의 골든 타임을 앞둔 인류를 선택의 기로에 놓고 있다.


대중의 눈에 과학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이고 얼핏 탈 정치화된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사회의 선택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세계 2차대전과 냉전, 그리고 에너지 사용의 폭발적 증가라는 문명의 변화에 힘입어 핵분열이라는 과학적 현상은 원자폭탄과 원자력 에너지라는 사회 체계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1930년대의 과학자들은 마치 처음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원자력 기술을 단시간에 개발하여 전쟁과 대량 에너지 소비라는 목적을 위해 증폭시켰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가 그 자체로 기능하지 않고 사회 내에서 하나의 체계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미국 로키 마운틴 연구소의 설립자 에이머리 로빈스는 에너지 체계를 선택하는 행위가 유명한 프루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가지 않은 길이 어땠는지를 아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한 것처럼, 특정 에너지원을 발전시킨 사회는 대안적 에너지 체계를 선택했을 때 어떤 모습의 사회가 될지 알 수 없다. 원자력 에너지를 개발하기로 ‘선택’한 국가는 그 에너지원에 맞는 사회 체계를 구축한다 - 해당 발전 형태에 맞는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련 인재를 육성하며, 발전원과 필요한 정책을 적용시킨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후 문재인 정부 당시 생겨난 <태양광 카르텔>을 해체하고, 친환경적이며 현재의 기술과 인프라로 확장이 가능한 원자력 발전 위주의 친환경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혹자는 원전이 재생에너지로 가는 길목에서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한다.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인프라를 확장하는 일은 인간의 선택에 기반하며, 따라서 굉장히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점이다. 원전 개발과 태양광 개발 모두 정치적인 결정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지금 우리가 하는 어떤 선택은 필연적으로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내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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