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시
너에게는 좋은 하루만을 선물하고 싶어서
섣부른 마음에 우선 네가 좋아하는 단어를 열거해
그리고는 내 멋대로 너의 세상을 정의하고 창조해나가
'잠옷'은 갑갑한 하루를 벗고 되찾은 자유
'머리말림'은 근심을 씻어낸 뒤 활력을 불어넣는 바람
'소등'은 찬란히 빛날 너를 위한 일시적 어둠 공급
이제 여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소중한 순간들을 버무려야 해
출근 없는 주말에 알람 없이 누리는 늦잠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린 강아지가 건네는 인사
일시적 즐거움만 추구하던 나를 정화하는 코끝 찡한 이야기
이제 와서 이 모든 걸 다시 너에게 주고 싶음을
두어 단어로 예쁘게 포장해야만 한다면
정확히는 이것들을 주고 싶은 마음도 사랑이라고 하고 싶은
나의 이기심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일방적인 사랑은 언젠가 교통정리가 필요하겠지
그때를 연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주말에는 같이 맛있는 걸 먹으면서
이런 나의 감정에도 웃긴 이름을 붙여주자
'필연을 소거하고 남은 우연'이나
'소중했던 기억들의 짬 처리'는 어때?
글자 수 제한이 걸린 아이디(ID)같은
무언가를 너를 위한답시고 준비해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