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Envy You

질투에 대하여

by 감자

‘부럽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쓰인다. 나보다 나은 무언가를 가진 사람에게 칭찬과 감탄의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질투의 감정이나 부정적인 어감이 담기기 쉬운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이 표현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 썼던 것 같다. 돈 많은 부자를 보거나, 외국어를 특출하게 잘하거나, 신체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럽다는 말을 쉽게 꺼냈다. 부러움에 잠식되다시피 했을 때는 상대방이 했을 노력은 보이지도,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저 남들의 성취와 행복이 내게 일어났으면 하는 막연한 꿈을 꾸었다.


20대 때는 아르바이트와 공부, 그리고 대외활동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면서 충분히, 그리고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부러워하며 ‘수저 계급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못난 인간은 취미생활로 즐겨하던 농구를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신체조건이 좋은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에 키 큰 사람이 농구를 잘하면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그를 부러워했다. 특히 신체조건이 좋은 외국인 유학생들과 섞여서 농구 경기를 할 때면 그런 경향이 더 컸다. 유학생들과 붙어서 질 때마다 내 실력이 부족한 탓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는 것은 타고난 신체 능력이 달라서야.’라며 부러움에 사로잡혔다.


그날도 후배랑 코트에 나섰는데, 둘이서 공을 던지고 있자니 상체 근육이 도드라진 40대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굳이 인종을 나누자면 동양인이었지만, 영어 감탄사와 제스처 하나하나가 본토 느낌이 물씬 나서 재미교포이거니 했다. 곧이어 도착한 농구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끼리 골대를 쓸 수 없어서 3명이 팀을 이뤄 ‘밀어내기’ 경기를 했다. 승리 팀은 남아서 계속 경기하고 패배 팀은 다시 차례가 올 때까지 밖에서 대기하는 규칙이었는데 우리 팀은 키는 크지 않았지만, 슛이 좋아서 승승장구했다. 아저씨도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제 몫은 다했다. 슛이 정확했고, 다른 외국인들이나 신체조건이 좋은 사람들과 상대하더라도 주눅 들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농구 자체를 즐겼다.


두 시간 정도 농구를 같이하고 나니 우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같이 술 한잔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영어가 짧아 걱정했는데 외국 살다 온 후배가 거리낌 없이 승낙하길래 말하다 막히면 통역해주겠거니 하고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우리는 길 건너 편의점에서 웰치스 포도 맛 여러 캔과 소주를 사서 외부 파라솔에 앉았다. 이러면 안주가 따로 필요 없다며 종이컵에 섞어주는 소주와 웰치스는 의외로 맛있었다. 한여름 저녁 식사도 거르며 두 시간씩 농구를 했으니 웰치스와 소주는 식사 겸 반주였던 셈이다. 달콤한 술을 연거푸 마시면서 아저씨의 해외 탐방기를 듣자니 안주가 없었던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랐다. 영어로 쏟아지는 이야기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태반이 자기 자랑 섞인 이야기였는데 한두 잔 술잔을 비우며 알딸딸한 상태로 들으니 맨정신에 집중하는 것보다 더 잘 들렸다. 나중에는 난 나대로 한국어로 대답하고 그는 그대로 영어로 말하는 상태인데도 대화가 통했다. 어쩌면 같은 말을 반복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는 소주 두 병을 비울 동안 ‘각국의 회사를 컨설팅하는 컨설턴트이고, 한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여행차 자주 방문하는데, 여행 다니면서 오는 인연 막지 않고 가는 인연 붙잡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정도 허세가 섞였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I envy you.”


으레 그렇듯 내 입에서 부럽다는 말이 나왔다. 탄탄한 근육이며 번듯한 직업이며 해외여행을 다니는 여유까지 부럽다는 뜻으로 한 이야기였다.


내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건네자마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잠깐의 공백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낯설었다. 실수로 f 워드를 잘못 썼을 때도 움찔하고는 웃어넘기던 그였다. 뭔가 실수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썼던 표현에는 부정적 어감이 있어 “I’m jealous.”라고 해야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은 술잔이 비워지기까지 무거운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복잡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부럽다는 말을 ‘제발(Please)’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이뤘던 모든 걸 당신도 얼마든 이룰 수 있으니 부럽다고 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두 손을 합장하듯 모으고 간곡하게 되뇌었는데, 그 호소는 나를 넘어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는 한국 태생 고아였다. 미국에 입양되고 얼마 안 있어 경찰이셨던 아버지께서 순직하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께서 아래로 비슷한 처지의 여동생 한 명을 더 입양하고 굳건하게 키우셨단다. 왜소한 동양인 남매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는데, 어디를 가나 자신과 여동생에 대해 괴롭힘이 이어져서 열 대 맞을 때 한 대라도 갚아주려다 보니 운동을 통해서 몸을 키웠다고 했다. 지금은 동생도 자신도 잘살고 있다고.


차별과 괴롭힘을 극복했던 이야기를 들으니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반듯한 모습만 보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게 된 것이겠거니 했는데, 인생을 걸고 노력했던 결과를 너무 쉽게 재단했나 보다.


무례함에 대한 사과마저도 가볍게 받아준 그는 시간 될 때 또 한잔하자며 부정확한 연락처를 적어주고는 비틀대며 작별했다. 그날 나에게서 무엇을 보았길래 자신의 일생을 들려주고 간 것일까. 다음날 깨질 것 같던 머릿속에 오래도록 자리할 교훈을 남긴 채로 말이다.


간혹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이 부럽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일단 포도 맛 웰치스부터 준비한다. 그러고는 태연스레 분위기를 잡고 자못 진지한 태도로 말을 꺼낸다.


“부럽다는 말을 쓰지 말아 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말이야.”


쓰디쓴 인생에 달콤한 안주라도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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