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난 Mar 03. 2020

남편이 웃으며 던진 돌

우리 부부는 둘 다 '입'이 문제야.

미간에 힘을 주고, 입술 왼쪽 위를 뾰족하게 올린다. 최대치의 경멸을 담은 눈빛을 장전해서 남편의 눈을 쏘아 본다. 탈수가 시작된 세탁기가 내는 소리를 들은 적 있나? 빨래통이 천천히 돌아가며 "우워워워" 낮은 음을 내다가 점차 가속이 붙어 회전이 빨라지면 "이워워워워 " 소리를 내다가 마지막엔 "쿠워워워워워우어어어!!!!" 라며 소리를 지른다. 가만 들어보면 스릴 넘친다.

딱 나다. 웅얼웅얼 말을 시작했다가 설움에 가속이 붙으면 화염처럼 욕을 뿜어 버린다. 쌍욕을 하지는 않지만, 약점을 건드려 비수를 꽂는 말을 "쿠워워워워우어어어어" 쏟아 낸다. 탈수가 끝나면 경박스러운 멜로디가 나오듯 질펀한 욕이 끝나면 어디선가 멜로디가 들리는 것 같다. 남편의 눈에 조롱이 담긴 멜로디를 나는 분명 보았다.

의도적으로 천진스럽게 심기를 건드리는 남편에게 걸려들지 말아야지 하면서, 매번 걸려드는 멍청한 나다. 얼마 전의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안에서 아이들과 며칠을 꼼짝 않고 지내고 있었다. 어깨가 결리고, 배가 아프고, 눈이 아프고, 자꾸만 짜증이 난다고 남편에게 호소했다. 나는 집에만 계속 있으면 없던 두통이 생기고, 안 아프던 무릎이 아프고, 괜찮던 마음도 심란해진다. 이런 나를 잘 아는 남편이 잠깐 바깥에 나갔다 오라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 그럼 시간이 애매한데, 저녁 대강 먹어도 괜찮아?"라고 되물었다. "그럼. 괜찮지. 편하게 나갔다 와" 라는 말을 기대하고 질문했지만 "언제는 뭐 진수성찬 차려줬어?" 라고 대답했다.

탈수 버튼이 눌러졌다. "니가 어제 먹은 강된장! 계란장조림! 콩나물무침! 버섯볶음! 아삭고추무침! 계란말이!는 뭔데! 요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내가 몇 시간 주방에 서서 요리하는 동안 오빠는 소파에 쳐!누워서 영화 보잖아! 난 뭐야! 식모야? 내가 해주는 것들은 당연해? 나한테 고마운 마음은 조금도 없어? 이러니까 나는 당신한테 자꾸 멀어져! 대접받고 싶으면 대접받을 말뽄새부터 배워!" 라고 아다다다 화를 냈다.

현관문을 쿵 하고 닫고 나왔다. 창문을 모두 훨쩍 열고 드라이브는데, 조금씩 화가 누그러졌다. 대체 왜 저렇게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까. 재미로 나를 건드리나, 의도를 담아 나를 비꼬는 건가, 갖은 생각들이 들었다. 우리 부부의 싸움은 대개 이런 식이다. 남편이 웃으며 돌을 던지거나 옆구리를 찌르듯 건드리면 열에 일곱은 내가 과하게 화를 낸다. 남편은 밉상스럽게 비꼬는 말을 해서 문제이고 나는 너무 쉽게 화를 내서 문제이다.

호의를 베풀었다 생각했는데 욕을 얻어먹은 남편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일찍 집에 들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저녁을 차렸고, 서로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했다. 다음날 남편이 내게  책이 있다며 내민다. <우주님이 가르쳐준 운이 풀리는 말버릇 > 하!제목... 배려하는 말하기는 오빠부터 배워야 하니 먼저 읽고 달라는 말에 거실에 벌러덩 누워 책을 읽어 본다. 남편이 책을 읽을 동안 점심을 차렸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남편이 한 마디 한다. "그러고보니 계란장조림도 네. 맛있다. 그러고 보니 콩나물무침도 했네. 힘들었겠다."


책 읽은 거 일부러 티 내? ?왜 이렇게 작위적으로 말해?" 라고 말하려다 그냥 히죽 웃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