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척되지 못하는 글을 오랫동안 싸매고 있다. 내가 어머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실일까. 하는 질문을 담은 글이다. 결혼 8년차, 어머님은 며느리인 내게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하실 만큼 애정어린 태도로 나를 대하신다. 한결같은 어머님의 태도에 반해 나는 그의 말과 행동에 결점과 모순을 찾으려 애쓰며 산다. 며느리를 사랑하는 시어머니의 사랑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며 어머님의 사랑을 무척 경계하며 의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어머님의 사랑에 어떤 허위나 가장, 모순을 발견하지 못했고, 내가 느낀 어머님의 사랑은 진실되다.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 부던히 의심하는 나의 행동을 통해 확인한 것은 내가 어머님의 사랑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머님의 사랑이 정말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하지만 여전히 이 사랑이 어렵다. 어떻게 글을 맺어야 하나.
일번. 어머님의 사랑의 기원이 무엇이건 어머님의 사랑은 진실하다. 생면부지 남인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주겠노라 다짐하는 그 내면의 동기가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고, 이성적 다짐과 감정적 마찰에서 오는 부대낌을 어떻게 해결하시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날 보는 어머님의 눈빛, 배려하는 태도, 사려 있는 말이다. 나와 어머님이 하고 있는 사랑은 남편과 내가 나눈 '낭만적 사랑'과도 다르고, 아이들에게 퍼붓는 나의 '모성적 사랑'도 다르고, 친구들과 내가 나누는 '연대의 사랑'도 다르다.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한채 가족이 되었고, 믿음과 배려의 의무를 가지고 서로를 대한다. 사랑이 태도를 결심하고 믿음, 배려, 이해와 같은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랑과 믿음에 관한 희망은 과하게 순진하고 허황될 뿐이라고 말하는 냉소적인 목소리를 차단하고 사랑을 의심하지 않겠노라 결심하는데만도 긴 시간이 걸렸다. 나는 어머님을 사랑하는 내 태도를 결정하기로 했다. 사랑을 의무로 지고 있는 관계란 있을 수 없다. 어머님을 사랑해야 할 의무같은건 내게 없다. 다만, 지금처럼 서로에 대한 애정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사랑을 하는 방법임을 이해하고 배려, 믿음, 응원을 노력하기로 한다.
이번. 어머님의 사랑은 계산적이다. 우리의 관계는 '아들의 충실한 배우자'와 '손주들의 성실한 엄마'로서 내 역할을 전제하고 있을 때에만 온전해진다. 또 어머님과 나의 관계는 아들(남편)이나 손주(아들)의 어떤 역학관계 없이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목적'과 '의도'를 품고 있기에 어머님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을 할 수는 없을거다. 내가 어머님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아껴주기' 때문이고, 내게 '값 없이 (혹은 값 적게) 베풀어주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도 계산적이다. 사랑은 누군가의 불가해함을 품어주게 한다. 조건적이고 계산적이지 않은 결정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나를 미치게 하는 엄마의 일면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런 불가해함을 엄마의 한 특성으로 받아들인다. 시어머님의 불가해함은 그저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에 조건적이고 계산적이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친정엄마에게 가지는 내 태도에 비하면 어머님께 가지는 내 태도는 속물적이고 계산적이다. 하지만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에 대한 내 태도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사랑을 성숙시키는 시간, 사건, 노력 등의 리소스 양 자체가 다르고, 다른 구도의 역학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나와 어머님의 관계에서, '계산적인'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가해함을 애써 이해하려 서로에게 부담지우지 않고, 그저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이 뭔지 똑똑하게 알아보고, 요구의 충돌을 잘 조율하는 것으로 이 '계산적인 사랑'을 잘 키워보고 싶다.
일번과 이번의 결말은 모두 내게 진실된 마음이다. 이번의 결론이 어쩐지 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랑은 태도에 관한 문제이니 어머님과 나의 관계를 글로 쓰며 태도를 결정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묵혀뒀다가 다시 꺼내봤을 때, 더 마음에 와닿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