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높빛 Jun 21. 2022

말을 듣지 않는 노트북

어쩌면 쉴 수 있는 핑계거리 하나

   자취를 하면서 느낀 점은 '노트북은 만능'이라는 것이다. 과제와 연구를 하는데 도움을 줄 뿐더러, 심심하면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요즘은 TV를 보는 법까지 알게 되어 이것저것 다양하게 노트북의 장점을 활용하는 중이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성수기가 있는 것처럼 일에도 성수기가 있다. 나도 이 사회의 톱니바퀴니까. 한창 바쁠 때에는 노트북을 절전모드로 해두고 다닌다. 점점 노트북의 이용이 많아질수록, 으레 윈도우 업데이트를 하고 난 뒤에는 노트북 부팅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 했던 나는 일이 없을 때도 노트북을 절전모드로 해두곤 하였다.


    그게 발단이 된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노트북의 부팅이 몇 시간이 지나서야 되는 기현상을 목격하고 말았다. 첫 몇 십분은 언젠가는 켜지겠지 싶어 집안일과 다른 일들을 실행했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쌀통에서 쌀을 꺼내 밥을 지었다.


   그렇게 시간을 쓰고도 내 노트북은 켜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이리저리 스페이스 바와 컨트롤, 알트, 딜리트 키를 같이 눌러대며 '나는 답답한 것은 참지 못하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였다.


    이런 내 마음은 몰라주는 것인지 노트북은 켜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스마트 폰을 켜 이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졌다. 혹자는 무분별한 윈도우 업데이트가 오히려 성능을 떨어트렸다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시작프로그램이 많은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내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한없이 나약해진 나는 이내 몸을 침대에 뉘었다. 무기력이 곧 수면으로 이어졌고, 눈을 뜬 나는 켜진 노트북의 화면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노트북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숨 쉴 공간이 없는 바탕화면, 눌러도 반응 없는 인터페이스들. 어쩌면 노트북도 쉬고 싶었던 것이 분명했다. 너 덕분에 나도 쉬었으니 너를 쉬게 할 궁리를 하지만, 당장 처리할 일이 많았던 나는 버벅거리는 컴퓨터로 어찌저찌 백신을 다운받는다.


   어쩌면 버벅거리는 원인을 바이러스로 퉁치고 싶었던. 마치 마녀사냥을 행하던 근세 유럽의 성직자들처럼 나는 혈안이 되어 바이러스를 찾는다. 당연하게도 바이러스는 나오지 않았다. 수 년간 방문한 사이트가 네이버와 구글, 그리고 수많은 논문 아카이브가 다였던 나에게 바이러스는 사치였을 수도 있다.


   노트북을 청소해준다. 바탕화면에 널브러진 파일들은 한 곳에 정리하고, 불필요한 시작프로그램은 지우거나 사용안함을 체크했다. 다음에 우리가 만날 때는 빠른 속도로 만나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비슷한 것 같다. 오래 달린다고, 그것이 강한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쉬는 것도 능력이고, 회복하는 것도 기술이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잔가지들-인생의 고민, 용기가 아닌 걱정을 불어넣어주는 불필요한 사람들, 내일의 위험-은 모두 쳐낸다. 그저 오늘의 낮과 밤만 바라보는 근시안으로 살면서 오늘의 휴식을 취하는 밤이다. 나도 "업데이트" 중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