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타누키 차차 Jan 13. 2019

20. 아직은 직장인이 될 수 없다

잘하고 있진 않지만 좋아지고 있어요.

 작년 이맘때쯤, 퇴사를 하고 나서 달력을 하나 샀다. 한 장 한 장 뜯어 쓰는 옛날 달력. 하루하루 뜯겨나가는 시간들을 소중히 쓰겠다는 대단한 결심이었지만 공짜로 주어지는 매일매일 앞에 대단한 결심은 속수무책으로 소멸되어 갔다. 하루에 한 장 뜯어내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며칠이 지난 뒤에야 아차 싶어 이미 지나가버린 어제들을 서너 장씩 뜯어내 겨우 오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으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고 있어도 그것은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과는 무관하거나 다른 것을 했으면 더 좋았을 일들이었다. 게으른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는 시스템이 회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회사로 돌아가는 것을 잠시나마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내가 가진 다양한 모양의 나태함을 받아들이고 자유가 주는 무거운 책임감을 실감하는 일로 2018년의 대부분을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를 차리고 운영하는 일이 오히려 부수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순간의 상황에 부화뇌동하고 순간의 감정에 멘탈붕괴를 겪으며 직장인이라는 껍질이 벗겨진 알몸과도 같은 나약하고 비루한 자신을 부끄럽게 들여다보는 한 해였다.    


 믿어지지 않지만 그런 와중에도 우리가 차린 회사는 망하지 않았고 어느덧 1주년이 되어간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다면 특별히 망할 것도 없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엄청난 장점이다. 어디 망하지 않은 것뿐이랴. 미약하지만 발전도 있었다.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로 이전보다 조금 더 회사스러워졌다.


 우선, 명함이 생겼다. 드디어 세상에나. 그것도 아주아주 비싼 명함. 단가는 한 장 당 700원. 광고주의 것보다도 좋아서 조금 멋쩍은 명함이다. 우리 회사에 하나밖에 없는 아트 스타워즈가 자기가 꼭 쓰고 싶은 재질이 있는데 값이 좀 나갈 거 같다고 하여 내가 걱정을 좀 했더니 자신의 월급을 깎아서라도 만들면 안 되냐고 했다. 어느 외국의 종이 장인이 만든 재질이라나 어쨌다나. 아트가 그 정도 고집은 있어야 한다며 박조이는 그러라고 했고 재질이고 나발이고 재정을 담당하는 나로서는 진짜 월급을 깎아버릴까 고민하며 종이 장인에게 명함 값을 입금했다.


 장인이 만든 파란색 명함 안에는 맨 위에 공용으로 쓰는 메일 주소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그 아래 우리 세 명의 이름이 가로로 나란히 놓여있다. 이름이 나오는 순서는 인감도장을 만들 때 제비뽑기의 순서. 도장 1번을 뽑은 내가 가장 앞, 그다음은 2번 도장의 주인인 스타워즈, 마지막 세 번째가 박조이다. 어차피 모든 미팅을 세명이 일심동체로 다니고 있고 시디, 아트, 카피 역할이 정확히 나뉘어 있어 헷갈릴 일도 없으며, 사실상 명함이 필요 없다고 느꼈던 우리가 명함을 주고받는 불편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누군가 우리 중 한 명을 만나 명함을 받는다면 자동적으로 다른 두 사람을 함께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만들고 보니 가장 우리 다운 명함인 것 같아 모두가 마음에 들어 했다.    


 다음으론 세무사를 고용했다. 세금에는 무지하고도 무관심한 우리들이 부가세 신고기간을 놓쳐 벌금을 내게 되면서 세무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어쨌거나 재정을 돌보는 나는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돈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아주 소심한 일들에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며 그 스트레스 지수가 세무사를 고용할 때 지불해야 되는 비용보다 높아지면서 세무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연히 알게 된 어플을 통해 회사의 상황을 간단히 올리니 사방팔방에 숨어 있던 세무사들이 경쟁하듯 자신들의 프로필과 각자가 생각하는 최저의 비용을 올리며 입찰에 참여했다. 놀라웠다. 시장경제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광고업계에 경쟁 피티는 절대 사라질 일이 없겠구나. 나는 수 십 명의 엄청난 이력서를 훑으면서, 그중에서 최저 입찰 가격을 골라내면서, 시장 경제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면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돈의 논리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허무한 것인지를 깨달으면서 세무사를 선택했다.


 나중에 그가 멘사 출신인 것을 알았을 때 이렇게 어마어마하신 분이 이런 소소한 돈을 받으며 우리 일을 처리해줘도 되는 것인가. 내가 이 어플을 사용함으로써 세무사들의 노동환경과 질서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까지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박조이가 그 세무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 백 명 정도는 있어서 우리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살 테니 그런 연민은 남자 친구에게 하려무나 라고 말해주어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실제로 그의 카톡 프로필 사진엔 각종 고가의 취미를 즐기시는 사진들이 그득하여 지금은 마음 놓고 이것저것 아주 똥멍청이 같은 질문들을 시도 때도 없이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은행의 한도를 풀었다. 내 개인 계좌보다도 무쓸모였던 그 거지 같았던 한도의 법인계좌 말이다. 멘사 출신 세무사님을 통해 우리 회사가 은행에서 한도를 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동안의 세금 관련 내역과 매출입 관련 서류들을 들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또 안된다고 하면 은행을 바꿔버릴 태세로 단단히 벼르며 찾아갔는데 계좌에 돈이 왔다 갔다 한 흔적과 우리가 가져간 서류를 확인하고서는 너무나 쉽게 한도를 풀어준다 하여 김이 빠졌다.


 역시, 돈이 좋긴 좋구나. 땡전 한 푼 없을 때는 우리 회사는 평생 한도를 풀지 못할 것이라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부었으면서. 하루에 백만 원씩 며칠에 걸쳐 월급을 주고, 할 수 없이 내 개인 계좌에서 현금다발을 뽑아 은평 세무서로 직접 세금을 내러 다니던 노가다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새로 설정해야 하는 한도 금액란에 그동안의 한을 풀어내듯 50억을 적어 제출했다.   


 은행 한도를 풀고 나서 처음으로 월급을 주는 날. 이때 느꼈던 희열은 지난해 내가 느낀 성취감 중 단연 압도적이다. 100만 원짜리에서 50억짜리가 되는 기분은 정확히 100만 원짜리가 되어 101만 원에 막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명함도 월급도 세금도. 직장인일 땐 알아서 생기고 알아서 빠져나가던 것들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안 당연해진 시간을 지나오면서 나는 아주 조금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니게 된 것도 같다. 이제 와 다 소용없겠지만은 그간 회사로부터 얻었던 안락과 편리의 혜택들이 진정으로 감사해지려고 한다. 우리가 차린 회사가 쫄딱 망해 오갈 곳이 없어진 내가 다시 직장인이 되어야 한다면 정말로 불평불만 갖지 않고 주어진 명함과 월급과 세금에 감사하며 충실히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직장인이 될 수 없다.


 사무실도 없고 직원도 없고 차도 없고, 여전히 없는 거 투성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직장인으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우리가 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이 잘못으로 불리지 않으면 잘못을 좋아할 수 있게 된다는 걸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의 무수한 잘못들이 오늘의 비전이 되고 있고 그 과정을 내가 좋아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는 우리는 해야 하는 일들보다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기 위해 애써 볼 작정이다. 우리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 올해의 과정이 되길 나는 바라고 또 바란다. 


 새해 새날. 막내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하고 사냐고, 여적 노는 거냐고. 이제는 더 이상 백수라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린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툭 그다음 말이 뱉어졌다. 

"회사를 차렸어. 아직은 직장인이 될 수 없어서."     

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데 1년이나 걸렸다. 







아, 새로 생긴 게 하나 더 있네요. 회사 이름으로 인스타를 만들었어요. 셋이 돌아가면서 무언가 올리고 싶을 때마다 알아서 올리기로 했는데 거의 저만 올리고 있긴 하지만요. 간간이 박조이와 스타워즈가 올리는 게시물과 제가 종종 올리는 저희 회사 일지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겁니다.


Instagram@waveproject18

매거진의 이전글 19. 낭만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