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롤라>

Lola, 1961

by 박종승

영화를 보며 백야가 떠올랐다. 여름 동안 하얀 밤이 유지되는 현상 그 자체도 그렇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역시 그러하다. 영화 <롤라>는 밤에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배경은 어둡지 않다. 흑백영화인 걸 감안하고서도 한 눈에 밤중임을 알아볼 수 있는 어두움의 이미지가 뚜렷하지 않을 때가 있다. 주로 밤에 일하는 롤라(아누크 에메)가 새벽녘에 누군가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길인데 백주대낮이라고 해도 될 만큼 밝으며, 심지어는 밤에 운영하는 캬바레의 창으로는 밝은 빛이 들어온다. <롤라>는 여주인공 롤라를 중심으로 프랭키(앨런 스콧), 롤랑(마크 미셸), 미셸(자크 하든)까지 세 남자와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롤라는 캬바레에서 춤을 추는 댄서였고, 미 해병인 프랭키는 그를 보러 캬바레로 향한다. “자유를 중시한다”는 롤랑은 책을 읽느라 취업 3일째에 5회나 지각을 하며 잘리고야 말지만 첫사랑 롤라를 우연히 만나고 다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롤라는 7년 전에 떠난 미셸을 어린 아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 셋과 어울리는 여자의 이야기가 뭐라고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까지 자크 드미란 이름, 누벨바그란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아직도 주목하겠는가. 자크 드미는 여기에 14살짜리 소녀 세실(애니 듀퍼)을 투입시킨다. 주목할 건, 롤라는 댄서로 활동하며 예명으로 롤라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으나 본명은 세실이라는 것이다. 어린 세실 역시 롤라(그녀 역시 세실이지만 구분을 위해 롤라라고 칭한다)처럼 댄서가 되길 꿈꾸고 있으며, 롤라의 주변을 맴도는 남자들과 만난다는 것이다. 영화는 두 명의 세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롤라와 세실은 시공간을 거스른 서로의 메아리처럼 그려진다. 이게 누벨바그 작가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헐리우드를 포함해 소위 전형적인 웰메이드 영화였다면 시간적 배경의 차이를 이미지로 드러내거나, 플래시백 등의 기법을 쓰거나 했을 텐데, <롤라>엔 전혀 그런 것이 없다.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여러 인물이 차례로 나와 자기 분량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러면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일시적이다. 누군가는 곧 떠날 계획이고, 다른 누군가는 최근에 낭트에 도착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떠날 것 같다. 영화 속 행복한 이미지들 역시 찰나의 것이다. 영화의 숏과 컷의 성질처럼. 다시, 캐릭터들이 그 차례를 넘기는 바통으로서의 역할을 세실이 하는 셈이다. 세실이 프랭키를 만나고, 그 후에 롤랑을 만나면, 롤라는 미셸을 만난다. 세실이 프랭키와 롤랑과 했던 행동이나 대사는 롤라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반복된다. 우연히 둘의 이름이 세실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촬영현장에서의 우연을 포착하고자 했더라도 이건 의도가 담긴 것이라 믿고 싶다. 현재의 롤라는 과거에 세실이었다. 과거의 세실이 프랭키와 롤랑과 하는 행동들은 현재의 롤라가 갖고 있는 미셸과의 기억, 혹은 그것을 반영한 꿈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냉전시대에, 아니 그 무엇이 아니더라도 미셸은 군에 입대했을 수 있고, 전역 후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와 일자리를 찾아 방황했을 수 있고, 그런 과정을 거쳐 낭트의 롤라에게 돌아왔을 수 있다.


프랭키와 롤랑과 미셸의 언행을 완전히 일치시킬 수 없다면 그것은 정반합의 관계, 프랭키와 롤랑을 거쳐 미셸에 다다랐다고 볼 수 있고, 그래서 프랭키와 롤랑은, 그리고 세실은 미셸과 마주하지 못한다. 그것이 모두 아니라면 롤라의 꿈일 수도 있다. 가타부타 부연하지 않고 그냥 꿈이라고 해버리면 쉬울 것을 단순하게 넘겨버리고 싶지 않은 건, 꿈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는 건 프랭키가 낭트를 떠나기 전 세실과 유원지에 가서 2개의 놀이기구를 타고 나올 때 이례적으로 보이는 슬로모션 때문이다. 세실과 프랭키는 범퍼카를 타고, 회전의자(서울랜드에선 ‘록카페’라 칭하고, 에버랜드에선 ‘챔피언쉽 로데오’라 부르는 이 놀이기구를 뭐라고 부르는가요?)를 탄다. 범퍼카의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봤자 우리는 누군가와 의도치 않게 부딪힌다. 영화 속 인물들은 범퍼카처럼 우연히 부딪힌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처럼,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놀이기구에서 내릴 때 바흐의 평균율 조곡 1번 프렐류드가 흘러나오며 슬로모션이 펼쳐진다.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던 꿈에서 깨기라도 하듯이.


movie_image.jpg


그렇게 마지막을 고한 프랭키는 세실을 떠나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것은 프랭키가 롤라를 떠날 때도 그랬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마음을 줬던 이와 헤어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신난 듯 보였다. 프랭키와 헤어진 세실은 곧장 집으로 달려와 역시 롤랑과의 마지막 식사를 한다. 세실은 롤랑의 옷에 떨어지려는 단추를 꿰매준다. 세실이 우연히 만난 프랭키와 롤랑에게 갖는 감정을 한 사람에게서 본 두 가지의 면모라고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롤랑은 그길로 롤라에게 향한다. 하지만 이미 미셸이 낭트에 도착해있었고, 롤라는 7년간의 기다림 끝에 사랑했던 연인과 상봉한다. 미셸의 캐딜락을 타고 떠나는 롤라의 왼편으로 걸어가는 롤랑의 모습이 보인다. 두 발로 걷던 인류는 기술의 개발로 바퀴 달린 이동 수단을 이용하게 됐다. 차를 타고 나아가는 롤라에게 있어 반대로 걸어가는 롤랑은 그 자체로 과거일 테다. 미셸은 뒤를 돌아보는 롤라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롤라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한다. 흘러간 과거에 대한 회상을 그렇게 마치듯, 한 순간 꾼 꿈이라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듯.


자크 드미는 프랭키와 롤랑이 떠나고 남겨진 세실과 롤라의 감정에 집중하지 않는다. 롤랑을 보고도 아무 일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롤라나, 그렇게 다른 방향으로 떠나버린 롤랑에게 더 이상의 대사를 허락하지 않는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식의 멋들어진 대사를 붙일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하지 않았다. 마냥 예쁘다고 할 수도 없는 멜로이며, 단순하게 불륜이나 치정을 다룬 드라마도 아니다. <롤라>는 왠지 모르게 쓴맛이 나는 사탕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야>에서 ‘나’는 떠나는 나젠스까를 마냥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젠스까, 내가 모욕당한 것을 언제나 기억하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밝고 아늑한 행복에 검은 구름다리를 드리우리라 생각하는가! 심한 비난의 말을 퍼부어 너의 가슴에 슬픔을 주고, 비밀스런 가책으로 너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며, 행복의 순간에도 우울한 생각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네가 그와 함께 제단을 향해 걸어갈 때 너의 곱슬머리에 꽂은 그 부드러운 꽃 가운데 단 하나라도 짓뭉개 놓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오, 결코, 결코 그런 일을 없을 것이다. 너의 하늘이 맑게 개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그리고 감사함으로 가득한 어떤 외로운 가슴에 네가 심어준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대해 축복받기를! 아! 하느님! 더 없는 기쁨의 순간이여! 인간의 일생에 있어서 그것만으로 부족함이 없지 아니한가?”


롤랑이 롤라와 미셸의 재회를 마주한 순간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이 흐른다.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롤랑이 낭트에 도착했을 때, 같은 노래가 나왔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왜 홍상수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같은 노래가 나와서일까. 해원(정은채)은 성준(이선균)에게 “원하는 거 어떻게 다 하고 살아요?”라며 이별을 고하고 남한산성을 걷는다. 해원은 평소엔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더 먼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걸음 끝에 “남한산성 걷는 거, 좋았어요?”라고 물으며 막걸리를 한 잔 건네던 후원(기주봉)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벨바그의 기수들은 기존의 병폐한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들은 지난 세월을 두고 떠나려 했다. 롤랑은 프랭키와 함께 있는 롤라에게 욕을 하고 떠나지만, 이내 후회를 하고 돌아와 사과를 한다. 롤라는 두 달의 시간을 갖자며 “인생은 그래. 우리는 언제나 혼자야. 하지만 중요한 건 무언가를 원하는 거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행복을 바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행복해지는 거야. 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었어. 하지만 네 말이 맞아. 살아있다는 것은 멋진 거야. 중요한 건 떠나는 거야.”라고. 영화 속 이들은 ‘엘도라도’라는 이름의 캬바레에 들렀다가 떠난다. 전설 속 황금을 노리고 엘도라도로 향했던 수많은 정복자들은 실패를 맛봤다. 어린 세실이 롤랑에게 묻는다. “첫사랑은 왜 그렇게 강한 거예요?” 롤랑이 답하길, “처음 사랑한 것이고, 좀처럼 다시 그러지 못하거든.” 지나간 세대를 뒤로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누벨바그의 모습이 영화 속에 있지 않은가. 다시 그와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첫사랑 같은 영화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으려 하는. 그리고 그 영화들은 다시 누군가의 첫사랑이 됐을 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캐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