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제목도 긴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4시간 11분에 달한다. 역시나 인터미션이 있지만, 강제로 주어지는 그 휴식시간이 오히려 반갑지 않았던 영화이기도 하다. 느와르. ‘검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noire‘에서 유래한 장르로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정말 검고, 어두운, 그야말로 암흑가를 다루고 있다. 마피아가 있고, 갱들이 있는 그곳에 선(善)이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떤 느와르 영화를 봐도 그들의 행동은 인상을 찌푸리게 할 만큼 잘못됐다. 그러나 설령, 그들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의지마저 그런 것은 아니겠다. 질척거리는 골목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정의, 의리, 사랑 같은 것에까지 맞다 틀리다의 잣대를 적용하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장장 251분 간 영화는 미국으로 이민한 유대인 꼬마들의 인생을 다룬다. 홀로코스트가 아닌 아메리칸 드림이 짙게 깔려있는 설정이다. 누들스, 맥스를 필두로 팻시, 짝눈, 뚱보가 그 주인공들인데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기, 강도, 방화, 살인 등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감행한다. 그리고 그들은 장차 범죄조직으로까지 성장하기에 이르는데, 그들의 주변엔 누들스가 평생을 사랑한 데보라가 있고, 이들의 성적 첫 경험의 대상인 페기가 있으며,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맥스의 연인이 되는 캐롤이 있다. 거리를 활보하는 이 남성들에게 있어 여성은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 평생을 사랑했다면서,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면서 겁탈을 하고, 또 다른 이는 과거에 겁탈했던 이와 재회해 성적 농담을 주고받으며 연인이 되기도 한다.
누들스가 데보라와의 첫 데이트에서 고용한 운전기사와 나누는 대화가 있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일을 해 학비도 스스로 벌고 있다는 그를 누들스는 비웃는다. 평생을 그렇게 일하다 누릴 때면 이미 노인이 돼있을 거라고. 하지만 누들스는 그가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서 데보라를 겁탈한다. 평생을 사랑했던 여인에게 거부당한 그를 카메라는 담는다. 주인공으로서, 깡패로서 미화하는 영화가 아닌 그 어리석은 꼴에 냉소를 던지고 있다.
영화는 이들의 어린 시절인 1920년, 그리고 모종의 사건 이후 누들스가 감옥에서 출소해 크게 사업을 벌이는 1933년, 그리고 노년이자 현재에 해당하는 1968년을 넘나 든다. 1920년엔 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이 수가 상당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돈이 되는 일이라곤 무엇이든 하면서 구축한 그들의 사회는 현재도 무시하지 못할 만한 규모라고 한다. 1919년 발효된 금주법이 1933년까지 시행됐다. 술을 마시는 것이 불법이 된 때에 아이러니하게도 ‘재즈 시대’가 열렸다. 법을 피해 지하에서 그들만의 문화가 발달했던 것인데, 지하에 형성된 세계엔 범죄 조직이 힘을 키우기도 했다. 1960년대엔 히피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마리화나나 LSD 같은 약물이 돌았고 비틀즈는 히피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뚱보의 술집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길거리의 모습이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러닝타임이 긴 만큼 할 말도 참 많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옛날 옛적에...’하며 도무지 잡히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과거를 되돌아보는 영화인 셈이다. 세 개의 시대를 오가는 지점이나 기법은 탁월하고 유려하다. 하지만 역시 그 과거를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이나 선이라곤 고려하지 않았던 그 과거에, 그나마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주인공을 떠나갔다. 영화의 마지막 숏, 주인공이 활짝 웃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아편에 취하고자 했고, 아편에 취했다. 그가 일평생 동안 일궈낸 것은 하나도 없었고, 붙잡고 싶은 과거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흐릿해져 약물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미래? 곁에 아무도 없는 그의 미래는 이 영화의 분위기만큼이나 어둡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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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황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