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iku and the World, 2024
우선, <오키쿠와 세계> 관람 예정인 분이 있다면 공복에 가길 바란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응꼬((うんこ) 편의상 응꼬라 칭하겠다.)가 이미지며 사운드며 너무 적나라하게 나온다. 영화가 끝난 후 검색을 통해 실제 응꼬가 아니란 것을 알았음에도, 영화를 다시 되뇌는 이 순간에도 무언가... 그러하다.
영화는 1858년 메이지 유신 직전의 에도 시대를 다룬다. <기생충>(2019)의 동익(이선균)네와 기택(송강호)네가 그랬듯 에도(도쿄)엔 부자들도 있고 서민들도 있다. 폭우가 쏟아지니 저지대에 있는 기택네 변기가 역류하듯, 에도의 재래식 화장실에선 응꼬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응꼬를 해결할 수 없으니 어떤 이는 “회충이 입으로 나올 것 같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응꼬를 만들지 않기 위해 굶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적, 디스코 왕 되다>(2002) 같은 영화까지 ‘똥퍼’가 다뤄지기도 했는데 다른 것은 똥지게를 지고 다니는 이들이 마을을 돌며 응꼬를 산다는 것이다. 응꼬를 만들어낸 이가 치워달라고 비용을 지불하는 게 아닌, 응꼬를 퍼가는 이가 돈을 낸다. 농가에서 퇴비로 쓰기 위해 인력을 고용한 것이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들을 피하더라도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와 츄지(칸 이치로)는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입에 넣으면 다 곤죽으로 변하잖아. 돌고 돌아 똥이나 음식이나 똑같아.”
야스케와 츄지는 누구도 그들의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폭우가 쏟아졌을 때의 모습처럼 모두에게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먹고 응꼬를 배출하는 건 매한가지고, 그 응꼬가 다시 퇴비가 되어 작물로 자라나 다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순환 구조를 우리 삶에 빗대어 말한다.
상사의 불의에 항명했다가 몰락한 사무라이 겐베이(마키 쿠로우도)는 자신의 딸 오키쿠(쿠로키 하루)가 츄지를 마음에 두고 있는 줄도 모르고 츄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네, 세계라는 말을 아나?"
“아뇨, 모릅니다. 읽고 쓸 줄도 몰라서...”
“이 하늘의 끝이 어디인지 아나? 끝 같은 건 없어. 그게 세계지. 요새 나라가 어수선한 건 이제 와서 그걸 알아서야.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야. 이보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해줘. 그 말보다 좋은 건 없어.”
<오키쿠의 세계>엔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섬세하게 그려놓은 인생사가 담겨있다. 응꼬를 퍼담던 동그란 지게 통과 빗물에 넘쳐흐르던 화장실의 클로즈업이 있던가 하면, 마알간 물이 일렁이는 동그란 수돗가의 모습도 있고, 소복하게 눈이 쌓여가는 동그란 바구니의 클로즈업이 있다. "세계라고 하는 것은 저쪽을 향해서 가면 반드시 결국 이쪽에서 돌아온다. 그런 겁니다."라며 승려가 ‘세계’라는 단어에 대한 친절한 해설 같은 것이 영화 곳곳에 있다.
그리고 그 비루한 삶임에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이 있다. 신념을 굽히지 않으려는 츄지의 모습도, 누군가에겐 허풍처럼 들릴지라도 언젠가 이루겠노라 꿈을 꾸는 야스케의 모습도, 언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참을 기다리는 오키쿠의 모습도 다 그러하다. 흑백영화임에도, 화려한 분장이나 소품이 없음에도, 응꼬 냄새가 스크린을 넘어 전해지는 것 같더라도 이 영화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사카모토 준지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키쿠가 문 너머로 츄지의 멀어져 가는 발걸음을 들으며 좋아하는 이의 작은 발소리마저 담으려 하는 모습이나, 충의(忠義, 츄기)를 ‘츄지’로 잘못 써 놓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이나, “눈이 오면 사방이 고요해져서 좋다”던 츄지가 오키쿠에게 겐베이에게 들었던 ‘세계’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하늘을 휘저으며 땅을 내리치던 모습들이 그렇고, 그것을 표현해 낸 배우들의 연기력이 감탄스럽다.
영화의 마지막, 어안렌즈로 바라본 세상은 굽어 보인다. 이쪽으로 빙 돌아가던 세 인물은 저쪽에서 빙 돌아 다시 나타날 것 같아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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