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da by Agnes, 2019
아녜스 바르다는 올해 3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기획한 서울아트시네마도 놀랐겠지만, 3월 26일부터 아녜스 바르다 특별전이 열렸었다. 나는 곧장 가고자 했던 일정을 취소했더랬다. 나는 17년의 겨울, 좋아하던 가수의 비보를 접하고 보름을 앓았던 기억이 떠올라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것은 5월 30일에 개봉한 이 영화 역시도 그랬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나 이젠 덤덤하게 볼 수 있겠단 생각으로 영화를 틀었다.
나는 아녜스 바르다라는 영화를 참 좋아했다. 겁 없이 달려들었던 누벨바그란 거창한 이름은 지금도 잘 모르지만,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고 그가 곧 영화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바르다는 연극과 뮤지컬이 펼쳐질 대극장에 사람들을 초대해 자신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문득 시계를 보곤 흘러가는 시간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그럼 전 떠납니다.”라는 그녀의 마지막 대사를 붙잡고 영영 놔주기 싫었을 것이다. 1928년에 태어난 이가 자신이 만들었던 영화에 대한 짧은 코멘트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가 나오는 거장, 아녜스 바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은퇴를 하고자 했음일까? 어떻게 자신의 영화사를 돌아보는 것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방식, 생각, 태도, 그 모든 것이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1955년부터 65년 간 서른 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동력으로 “영감, 창작, 공유”를 말했다. 영감이란, “왜 영화를 만들까? 어떤 동기, 어떤 생각, 어떤 상황, 어떤 우연이 욕구를 낳아 영화란 일을 하게 할까?”에 대한 것이고, 창작이란, “어떻게 만들까? 어떤 방법과 구성이 좋을까? 혼자 할까? 컬러로 할까?”라는 것이고, 공유는, “영화는 혼자 보는 게 아닌 보여주는 거니까요. 지금 여러분의 공유의 실제죠.”라고 했다.
자의식의 과잉으로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는지 짐작도 하기 어려운 영화가 있는가 하면, 아녜스의 영화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드러났고, 그러면서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창의적이었다. 극장에서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극히 드물긴 했지만, 영화감독인 그가 책이나 전시가 아닌 영화로서 자신의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 raisonné)’를 냈다는 것부터가 말이다. 감히 그를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보며 느꼈던 감상이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를 보며 확고해졌던 바이다. 자신의 영화에 대한 훌륭한 해설집을 내놓았으니, 이제 거창한 해설을 늘어놓는 ‘척’할 필요가 없으니 더 좋다. 그가 말한 세 가지 동력 중 ‘공유’에 집중해, 그의 영화를 보며 떠오른 기억을 찬찬히 더듬고, 그것에 대한 재공유가 이루어지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 기억이 아닌 한 가지 궁금한 점은, 그의 영화에 흑인이 없다는 점이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가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을 담은 <블랙팬서>(1968)라는 다큐를 찍었음에도 말이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포스터는 해변에서 간이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다. 해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그는 촬영장 어디에나 있었을 그 간이의자에 앉아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행복>(1965)에 이어 여러 촬영장을 오간다. 백발이 성성한 최근의 모습에서, 젊었을 때의 모습을 오가는 편집을 통해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 장면을, 영화를 찍었는지 말한다. 하나의 이미지를 보고도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각각의 다른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사진작가로 시작한 그녀의 작업은 내게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로 확실히 각인됐다. 정지된(still) 이미지를 이어 붙여 움직이는(moving) 이미지를 만들어낸 그의 작업이 지닌 속성은 그의 영화가 단순히 스크린, 극장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상기시켰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JR과의 협업을 통해 90세의 나이에도 배움의 의지를 드러냈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이 마지막 인사가 아니길 바랐는데,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그녀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 아니길 바랐는데,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모습이라면 더더욱 안녕을 말하기 싫어진다. 이젠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음이 야속하기만 하다. 말 한 마디 섞어보지 못한, 아니, 심지어는 그가 활동했던 프랑스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내게 언젠가 꼭 프랑스행 비행기에 오르리란 결심을 더더욱 확고히 하게 되는 사람. 그가 안녕을 고한 ‘생토뱅 쉬르메르’의 해변에 꼭 가보고자 결심을 하게 하는 사람.
아녜스 바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