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기록된 내 인생의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
2007년부터 KBS에서 방영되던 <다큐 3일>이 지난 3월 13일 방송을 끝으로 15년 만에 종영했다. 종종 <다큐 3일>을 보면서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는데 종영된다고 하니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큐멘터리 형식은 드라마를 통한 간접 경험과는 아무래도 다가오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다큐 3일>의 종영이 아쉬웠던 이유는 내가 살아온 날들 중 144시간 정도가 <다큐 3일>에 나오기 때문이다.
첫 번 째는 2009년 1월 17일에 방영된 <육군 102 보충대 72시간> 편이었다.
당시 나는 2009년 1월 6일에 군 복무를 위해 만 28세의 나이에 강원도 춘천에 있는 102 보충대에 입소를 했다. 사법시험 준비를 하다 보니 늦은 나이에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당시 102 보충대에 입소한 인원 중에 내가 제일 연장자였다. 나이뿐만 아니라 생년월일 순으로 따져도 내가 제일 연장자였고, 그래서 내 군번이 09-**000001였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해야 한다. 그래서 그랬던지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다큐 3일> 제작진 분들이 들어와서는 "여기 OOO훈련생이 누군가요?"라고 물어보았다. 내가 손을 들자 이번에 입소한 사람들 중에 최고령 입소자여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늦은 나이에 군대에 오게 된 이유, 심경 등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당시 나는 법무사관에 편입될 수 있는 나이를 한 살 초과한 상태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관계로 군법무관이 아닌 현역병으로 군 복무를 해야 했고 그래서 사법연수원에 입소하기 전에 군 복무를 마치기 위해 입소를 한 상태였다. 근데 그 당시에는 남들 다가는 군대에 조금 늦은 나이에 온 것이 유난을 떨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과 사법시험을 합격하지 못하고 군대에 왔으면 모를까 사법시험에 합격한 상태여서 전역하면 사법연수원에 곧바로 입소할 수 있었던 관계로 특별히 늦은 나이에 군대에 왔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애처롭게 보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매우 덤덤하고 무미건조하게 인터뷰를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방송을 봤는데 내가 한 인터뷰는 편집이 되어 방영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당시 내가 고시공부를 했던 대학교 고시반에서는 군미필인 사람들에게 사법시험에 빨리 안 붙으면 군법무관이 아닌 현역병으로 군대 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다큐 3일> 방송 중 내 모습이 나온 화면을 캡처해서 휴게실에 있는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놓았다고 한다.
두 번 째는 2011년 3월 13일에 방영된 <아직 가야 할 길, 사법연수원> 편이었다.
아마도 당시 우리나라에도 로스쿨이 도입되고 사법시험의 단계적 폐지가 예정되어 있었던 까닭에 온전한 모습을 간직한 사법연수원의 모습을 담으려고 한 것 같았다.
사법연수원 입소식을 하는데 <다큐 3일> 촬영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뭔가 기분이 묘했다. 불과 2년 전에는 이등병 보다도 더 아래고 이름이 아닌 번호로만 불리는 존재인 훈령병의 모습으로 나왔던 사람이 2년 후에는 정장을 잘 차려입고 사법연수원에 출근하는 어엿한 예비 법조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감회가 무척 새로웠다. 그렇게 내 인생의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을 <다큐 3일>이 기록해주었다.
영상으로 남긴 기록은 사진과는 또 달라서 지금도 <육군 102 보충대 72시간> 편을 보고 있으면 당시 느꼈던 불안감, 긴장감, 추웠던 기억 등이 되살아 나고, <아직 가야 할 길, 사법연수원> 편을 보고 있으면 고시공부를 하면서 꿈에 그리던 사법연수원을 입소했을 당시의 기쁨, 설렘과 흥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서 지웅이 연수에게 다큐 촬영을 설득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너가 생각하기에 휴먼다큐에 나오는 사람들은 뭐 때문에 출연하는 것 같아? 섭외할 때 난 항상 솔직하게 얘기해. 우리가 당신께 줄 수 있는 거 딱 하나밖에 없다고. 지금 당신 인생의 한 부분을 기록해주는 것. 맞아. 이렇게 말하면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지. 그런데 그걸 찍고 나면, 그리고 그걸 영상으로 볼 수 있게 되면 그때서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게 돼. 내 인생에서 순간을 기록해 간직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값진 건지. 그래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보다 너를 설득하는 일은 나한테 더 쉬운 일이야. 넌 가져봤잖아 그 기록들. 그럼 너가 제일 잘 알 텐데. 19살 초여름의 한 부분을 가졌잖아. 솔직히 말해봐. 그게 너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어?"
<다큐 3일> 덕분에 내 인생의 최악의 순간 중 72시간과 최고의 순간 중 72시간이 영상으로 기록될 수 있었고, 꺼내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그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15년 동안 <다큐 3일>의 영상 속에 담긴 수많은 인생 속의 등장인물들도 그렇지 않을까.
언젠가 인생의 여정 중 어떤 순간에 <다큐 3일>을 한 번 정도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쉽게도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내 인생 중 144시간을 영상으로 남겨 준 <다큐 3일>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표지 사진 출처 - KBS <다큐 3일> 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