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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Sep 02. 2018

<오늘을 잡아라> 솔 벨로

이 책은 진취적인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실패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다. 중년이자 남성이라는 데 관심이 갔다. 같은 또래로 인생의 중반을 살고 있는 인간이라니. 그 남성과 재력가인 아버지와의 갈등 관계가 흥미를 끌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 보자면, 아들을 둔 엄마로서 한 남성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가슴 서늘하게 읽어가는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실패한 인생의 가장 큰 문제가 돈이었기 때문에 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돈, 참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지만, 너무 없으면 인간을 한없이 비참하게 만드는 것에 이만한 것도 없다. 소설의 마지막은 주인공 남성이 장례식장에서 복받쳐 우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남은 적은 돈까지 사기를 통해 잃게 되자 죽음과 같은 벼랑 끝의 인생에 서있는 자신의 삶이 서글퍼 목놓아 운다. 돈의 부재는 삶 자체의 종말을 선고받은 것과 다름없었던 이 남성에게 절규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의 절규라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어쩌다가 주인공 남성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주인공은 대학 시절 잘생긴 외모 탓에 할리우드 영화배우가 되길 기대하며 학업을 접고 LA로 향한다. 그 뒤로 7년의 세월을 허비했지만 영화배우가 되는 데에 성공하지 못한다. 아내와의 결혼 생활도 원만하지 않다. 세일즈 직장을 얻었지만, 자신이 받아야 할 인정과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감정에 못 이겨 직장을 박차고 나온다. 직업을 잃고 새 직장을 얻을 생각 없이 무책임하게 방황한 지도 수개월이 되었다. 아내 외에 사랑하는 여인이 있어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아내는 호락호락 이혼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아이 둘을 위한 양육비를 대느라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돈이 이제 거의 바닥이 났다. 


그런 주인공에게는 은퇴한 내과 의사이고 덕망 높은 재력가 아버지가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 하고 제멋대로 사는 아들에게 더 이상 물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미 너무 많이 아들을 위해 희생했기에 또 그런 희생이 아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아버지는 아들이 아무리 도움을 호소해도 냉정하게 잘라 말한다. 아버지 등의 짐이 되지 말아 달라고. 아버지에게는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아들의 짐에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한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를 매정하게 생각한다. 꼭 돈이 아니라도 아버지의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아들은 절망을 느낀다. 대신 정신과 의사라고 하는 다소 허풍적이나 그에게 귀를 기울이는 탬킨 박사에게 아들의 마음은 끌린다. 아버지는 사기꾼 같은 사람과 가까이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아들은 탬킨 박사가 전하는 “오늘을 잡으라”는 삶의 노하우와 정신과적 치료법에 더불어 월스트리트에서의 투자에 대한 헛된 희망 때문에 그의 조언을 들으며 따르게 된다. 급기야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돈까지 탬킨 박사에게 모두 맡기고 오직 돈을 불려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마지막 성공을 꿈꾸지만, 결과는 안타깝게도 믿었던 탬킨 박사가 주인공의 돈을 모두 가지고 달아나고 만다. 빈털터리가 된 주인공은 탬킨 박사를 찾아 거리를 헤매지만 결국 찾지 못한 채 인파에 떠밀려 들어온 어느 장례식장에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을 놓고 감정에 복받쳐 목놓아 운다. 소설은 그렇게 약간은 허망하고 어이없게 주인공을 울게 놔둔 채 차갑게 끝이 났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돈의 위력이다. 돈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비참해질 수 있다니. 돈이 아주 위급한 상황에 치달을 정도로 없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주인공처럼 당장 오늘 밤 호텔 방세를 내지 못할 지경이 되면 그처럼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불문하고 아버지에게 염치없이 도움을 구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멀쩡한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한심한 인간이 되었을까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는 건, 보통 사람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자신의 생을 망가뜨리게 놔두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아무리 없어도 이 지경이 되지는 않을 정도라는 얘기는 이 주인공의 삶이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뭔가 많이 잘못한 것들이 있지 않았나 살펴보게 된다는 거다. 방탕한 삶이었든, 제멋대로의 삶이었든, 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삶이든, 정신 못 차리고 앞뒤 안 가리고 살았든, 어떤 방식이었든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에는 주인공 스스로 택한 삶의 태도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지게 되었는지, 대학 시절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허영심에 공부를 그만두고 할리우드로 간 그것이었을까? 제멋대로 사는 인생은 주인공의 젊은 나이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사실 진짜 문제는 공부를 그만둬서도 아니고 영화배우가 되고자 했던 헛된 꿈이라는 데에 있지 않다는 건 우리 모두 다 아는 바이다. 그보단 이성적이지 못하고 무모해 보이는 삶의 태도랄까.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는 게 인생인데, 때로는 오늘 식탁에 올릴 빵을 위해 막노동도 해야 하고, 남 앞에 굴욕적인 시간도 보내야 하고, 머리 깨지도록 고통도 겪어 보고 수모도 겪어야 하는데 주인공은 이 과정을 회피해오지 않았나 싶다. 중년의 때까지 줄곧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면서.

 

삶은 많은 경우 개인이 택한 선택의 소산물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신중하지 못한 주인공의 선택들은 결국 자신이 자초한 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 한다. 별 신통치 않아 보이는 영화배우 제안에 학교를 때려치우고 인생의 급전환을 한 것도, 심지어 마지막 남은 돈을 투기에 모두 건 무모함도, 40 중반에 아버지의 동정과 도움을 구하는 뻔뻔함도, 양육비를 달라고 하는 재촉하는 아내를 아이처럼 원망하는 것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아내 외의 다른 여인과의 결합을 꿈꾸는 이기적인 마음도 어쩌면 모두 다 주인공이 스스로 만든 결과물이자 그가 불행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크고 작은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주인공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아내와 아버지는 한결같이 이 중년의 한심한 인생을 더는 도와주지 않는다. 왜냐? 이 방법만이 이 남자를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으니까. 언제까지 어린아이처럼 살아가겠냐는 메시지를 이 중년 남성은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시급히 받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젠 정말 구제 불능이 되어서 어쩌면 아무 변화도 이 남자에게 일어나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이 남성을 달리 도울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판단이다. 중년까지 도왔으면 정말 많이 참고 도와준 게 아니겠는가? 이제는 정말 노년이 되기 전에 홀로 서야 할 마지막 때가 온 것이다. 이 기회마저 놓치면 이 한심한 중년의 남성은 아마도 정말 길바닥에 드러누워 남은 인생을 더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누군가를 의지하기보단 자신이 철저하게 눈물겹게 홀로 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너무 늦게 중년에 온 것이 모두에게 여전히 비극이긴 하지만.


부모의 마음으로 주인공을 바라보니, 지금 대학에 다니는 내 자식이 저렇게 한심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든다. 한 인간이 제대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 최소 무려 20여 년이 넘는 세월의 부모 희생이 필요하고, 이것도 모자라 이 소설 속 주인공의 경우처럼 결혼해서도 아들의 경제적 살림을 돕기 위해 재정적으로 도움을 계속해서 주는 현실이 의외로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물론 그것도 그럴 여력이 되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자식이 제 앞가림 못 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재력이 있든 없든 어느 부모를 막론하고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부모의 재력이 없었다면 자식이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잘 성장하지 않았겠냐는 일말의 회의마저 드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부모의 마음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일 것이다. 이 소설 속 아버지가 그런 마음으로 아들을 외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뭔가 분명하게 깨달은 게 있어 보인다. 아들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이제 정말 정신 차리고 자기 앞을 가리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내도 남편이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 말고 철이 들기만을 바라며. 어쩌면 주인공의 돈을 들고 사라진 탬킨 박사도 같은 마음으로 그에게 인생 치료를 해 준 것이 아니었는지. 마지막 떼먹고 간 돈은 그 치료비라고 생각하자. 


마지막 주인공이 절규하듯 복수하듯 외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이혼을 쟁취하는 일이야. 아버지에 관해서는, 자동차를 고물로 팔아서라도 내가 호텔비를 내야지. 그리고 올리브에게 가서 무릎 꿇고 말할 거야. 올리브! 잠시 동안만 참아 줘. 그 여자 (아내)가 이기게 할 수는 없잖아.” 


이렇게 맹세하는 주인공 남성을 보며 아버지와 아내의 매몰찬 외면이 드디어 한 인간의 새 출발을 시작하게 한데 도움을 주었다고 믿는다. 이를 악물고서라도, 부모와의 연을 끊고서라도, 자식이 한 인간으로 제대로 성장해 나간다면, 이건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을 잡아라>의 제목이 주는 절박함이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나 그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모두에게 경고하는 바가 많다고 본다. 오늘마저도 기회를 잡지 못하면 우리는 중년의 나이를 지나서도 노년에 이르러서도 한심한 인간으로 아니 괴물로 자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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