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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Oct 21. 2018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공항 서점에는 고를 수 있는 종류의 책이 많지 않다. 기념품을 함께 팔고 있는 작은 서점에는 신간과 베스트셀러 그리고 심지어 어린이 학습서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런 서점의 서가에 꽤 비중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역시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섹션이었다. 한국 출장 내내 책을 좀 읽어 보려고 틈만 나면 서점에 들러 책을 샀다. 그런데 호텔 숙소를 옮길 때마다 그 책들을 미련 없이 휴지통 옆에 두고 왔다. 끝까지 읽은 책도 겨우 한 권 정도가 전부였다. 유난히 책 선정에 실패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또 공항 서점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옮겨 갔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3주간의 출장에 몸도 피곤했고, 10시간가량 작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있을 생각에 이미 심신은 모두 지쳐 있었으니까. 그래서 소설(!)을, 그것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주저 없이 골랐는지 모른다. 역시 비소설은 웬만해서 만족을 주기 힘들다. 적어도 이번 여행의 경험을 통해서는 그랬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은 물론 없었다. 출판사가 붙인 부제 “엇갈린 운명의 연인들, 그 ‘과거’ 때문에 슬픈 사랑 이야기”를 보고 단숨에 끌렸다.


비행기가 30분 늦게 연발을 하고 1시간 남짓 활주로를 달려 나갔다가 기계 결함으로 다시 돌아오는 사이에도 나는 이 책에 심취해 있을 수 있었다. 12살 어린 시절 과거에 만났던 연인과의 추억이 한 중년 남자의 삶을 전복시키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사업에 성공해 부유한 가정을 이루어 가고 있는 한 남자가 어린 시절 가깝게 지냈던 여인을 25년 뒤에 다시 만난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는 두 번 다시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결심한다. 그리고 남자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고백한다. 헤어지기를 원하냐는 아내의 질문에 답변은 금방 못하지만, 그날 밤부터 남자는 거실 소파에 이불을 깔고 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자의 옛 연인은 하룻밤 별장에서 몸을 나눈 이후로 신기하게 남자의 삶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언젠가 신기루처럼 이 여인이 다시 등장할 것만도 같은데 소설의 결말에 이르도록 이 여인은 남자의 삶에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환상을 남긴다. 남자는 이 여인이 혹시 자살한 게 아닐까 궁금해 신문을 뒤진다. 독자인 나로서도 이 여인의 행방이 매우 궁금했고 앞으로 어떻게 이 둘의 이야기가 흘러갈까 숨죽이며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소설은 남자가 이 사건을 놓고 남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지 막바지 정리를 향해 빠르게 이동해 갔다.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재차 발견해 가고, 자신의 삶을 정리해 가는 주인공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가 현재 삶에 주는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본다.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철저한 자아 발견, 아내를 비롯해 과거의 연인에게도 상처를 주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자신, 그리고 앞으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갈지 모를 자신에 대한 불확신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노력해 보겠다는 남자의 결말이 아내의 마음에 희망을 준다. 동시에 읽는 독자에게 현실 즉시에 대해 미미하나 경종을 울린다.


결말을 접하며, 남자가 옛 여인을 찾아 자신의 욕망대로 새살림을 차려 사는 것을 보는 것보다 내 마음은 훨씬 편안해짐을 느꼈다. 부족한 인간들끼리 서로 상처 주고받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보듬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 그 자체와 매우 가깝고, 그것이 바르게 사는 일이라고 믿는다. 과거를 찾아 떠나는 것보다 욕망대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삶이기에 삶에 대한 외경심마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옛 여인이 환상처럼 사라져 준 것이 이 남자를 위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소설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 우리의 삶은 소설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가 될 만한 일이 알아서 사라져 주지 않으니까. 구질구질하게 남아서 우리의 삶을 더 깊이 파괴하고, 서로에게 더 아픈 상처를 남기고, 더 슬픈 일들을 껴안고 살아가도록 운명을 비참하게 만들게 하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에게 면죄부를 준 것 같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소한의 삶의 기본은 서로에게 지켜줘야 하지 않느냐고. 아무리 아련한 옛 연인과의 추억이 있다 해도, 또 그녀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인생에서 양보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란 내 욕망만큼이나 중요한 실체임을 깨닫게 해 준다. 고마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처럼 국경의 남쪽이 훨씬 더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 국경이란 선은 반드시 우리 안에 존재하고,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태양이 저무는 서쪽 그 어둠으로 우리는 너무 깊이, 멀리 가서는 안 된다.


책을 읽은 소감을 이렇게 교과서처럼 내리고 나니 아주 조금 노파심이 남는다. 내가 마치 주인공 남자의 외도를 단순히 경멸하는 천박한 독자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은 걱정에서다. 혼외 외도를 찬양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이 주인공 남자가 마음에 찾고 있었던 그 흡인력과 같은 사람으로부터 받는 그 무언 가에 대한 갈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고 극구 해명해 두고 싶다. 이 주인공 남자를 꽤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하며 소설을 읽은 것도 사실이다. 외도를 위한 외도를 하는 남자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외도에 무슨 변명이 필요하냐고 호통을 칠 극히 보수적인 사람들도 없지 않겠지만. 남자가 옛 여인으로부터 채우고 싶었던 그 결핍에 대한 욕망을 공감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너무 잘 이해하기에 이 소설의 결말이 감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늘 고민하는 인간을 너무도 잘 보여준 것으로 생각하기에. 그리고, 이 남자의 결말은 소설이기에 절제될 수 있었고, 그것이 가장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기에.


나약한 인간에게 현실의 제어장치를 만들어 준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현실에서 과거란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결말을 위해 여러 번 고쳐 쓰고 고심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마음도 매우 인간적으로 와 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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