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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석 Sep 27. 2022

오늘, 여행하듯 살기를

-영화와 책, 그리고 내 삶 속의 부산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는 영도(影島)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송강호·강동원·배두나·아이유가 출연했던 영화 '브로커'에도 마지막 즈음에 영도다리 아래 골목이 나온다. 영도에서 시작하는 책도 좋았고, 영도에서 끝나는 영화도 좋았다. 나에게 익숙하고 의미있는 장소를 누군가와 함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영도’라는 곳이 부산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섬인 줄만 알았다. 영도에서 자란 아내를 만나 영도다리를 건너며 첫 데이트를 했고,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곳도 영도였다. 우리는 영도에서 신혼집을 꾸렸고, 우리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도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많은 부산 사람들이 영도를 낙후된 곳으로 알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알고 전국에서 찾아온다. 크고 작은 까페가 셀 수 없이 생겨나고 있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 아래 ‘도날드’라는 오래된 떡볶이 집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우린 열한살에 만났다'라는 에세이도 부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년의 부부인 두 저자는 열한 살에 서로 좋아하기 시작해 지금은 스위스에서 아름답게 살고 있다. 두 분이 함께 다닌 부산역 근처의 봉래초등학교, 거의 매일 아침 아내를 태워주며 근처를 지나간다. 열한 살에 만나 지금까지 살아온 굴곡진 저자들의 삶의 이야기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부산에서 내 삶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매일매일 행복한 삶의 이야기가 채워지면 좋겠는데, 어디 우리 사는 것이 그럴 수만 있나. 우리의 일상은 구질구질하고, 소소하게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무의미로 가득한 것만 같다. 사랑과 정의를 외치지만 내 것 챙기기 바쁘고, 작은 거짓을 일삼으며 산다. 영화와 책에 나오는 이야기만 같지 않은 것이 우리 삶이다. 그래도 사소한 일들이 내 삶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정성을 쏟고, 진심을 담으려 애를 쓸 뿐이다.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생이었을 때, 여름이면 송도해수욕장을 사흘이 멀다 하고 갈 때도 있었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같이 가자고 하면 가고 싶으면 아빠 혼자 다녀오란다. 어디 좀 같이 나가 걷자고 해도, 집에 있는 게 좋다며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도 혼자 나가기 심심하고 멋쩍어 밖에 나가려던 마음을 접는다.

그래도 나가야 한다. 작년에 사둔 오리발을 꺼내야 한다. 수영은 못하니까 구명조끼도 챙겨서. 바닷물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아침 바다에 물안경끼고 혼자 둥둥 떠다니며 물속 돌고래 떼는 아니더라도 작은 물고기 떼 만나야 한다. 그런데 여름이 다 갔다. 오늘 비가 와서 바닷물이 더 차가워졌을 텐데 올여름 바닷물에 다시 몸을 담글 수 있으런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여행 오는 곳에 살면서 아무렇지 않게 산다. 여름 다 가고 가을이 오려 하는데, 하루하루 빨리도 간다. 부산역 앞에서 사진찍기 바쁜 연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급하게 지하철 타러 뛰어간다. 부산역 앞에 있는 밀면집, 돼지국밥집 앞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대단할 것 없는데, 길게 줄을 서서 설레며 기다리는 사람들을 본다. 

내가 있는 곳이 여행지, 나도 오늘은 대단한 일 없어도 여행하듯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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