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세부부 Oct 25. 2021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제발~

올해 아침, 저녁에 추가된 루틴은

호야(식물)에 깍지벌레가 생겼는지 확인하고

아보카도는 별 탈 없이 잘 크고 있는지다.


호야는 작년 5월에 지인에게 집들이 선물로 받은 건데

정말이지 미친 듯이 크고 있다.

벌써 3번째 분갈이를 했는데 벌써 지금 화분도 비좁다.

나름 다이소에서 제일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한 것인데 말이다.

넌, 혹시 우리의 무관심을 먹고 자라는 거니?


아보카도가 우리와 함께 살기를 시작한 것은 올해 4월이다.

아내는 그날 강남역 유명한 브런치 카페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아보카도 씨앗을 가져가 키울 수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 아보카도 씨앗 2개를 가져왔다.

아내는 나에게 음식점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아보카도 씨앗을 보여줬고

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보카도 씨앗을 만지작거리며 

기억 저편 구석에 박혀 있는 남미 여행을 끄집어냈다.


여행할 때 아보카도 정말 많이 먹었는데... 무지 쌌으니까.

아르헨티나, 페루 여행할 때랑 에콰도르에서 스페인어 배우며 2달간 살 때

아보카도는 없어서는 안 될 과일(?)이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자주 먹었으면서 키워볼 생각은 전혀 못했네.

  

아보카도 키우는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했다.

씨앗의 껍질을 벗기고 설명서대로 이쑤시개를 거치대 삼아

물통을 잘라 아보카도를 반신욕 시켰다.

이렇게 3-4주간 반신욕을 하면 뿌리가 나온다는 거구먼. 진짜 나올까?

우린 2개의 아보카도를 반신욕 시키고 "제대로" 방치해 놓았다.

시간은 째깍째깍 오리꽥꽥 틱틱틱하며 지나갔고 설명서대로 씨앗이 박 터지듯 중간이 쩌억!

갈라지더니 위로는 줄기가 아래로는 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요상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단단해 보이는 씨앗이 이 연약한 뿌리와 줄기로 인해 바위처럼 쩌억~ 갈라지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다.

난 이 광경을 매일 지켜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물만 있어도 이렇게 클 수 있는겨?

반신욕 3-4주하면 이런 박! 터지는 기적이 발생하는겨?

대단하네. 아보카도.

난 니들이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꿈에도 몰랐다~ 허허허.

한 달이 지나고 나니 물통에 이쑤시개 거치대를 이용해 더 이상

반신욕을 시키며 키울 수 없는 지경이 돼버렸다.

우린 다이소에서 흙과 플라스틱 화분을 사서 두 개의 씨앗을 사이좋게 하나의 하나의 화분에 정식으로 옮겨 심었다.

그리고 이름을 지었다.

아보, 카도라고.

어찌 보면 성의 없어 보였지만 기억하기도 부르기도 편해서 입에 잘 달라붙었다. 

아보, 카도!

시간은 흘러갔고 아보는 쑥쑥 크는 반면 카도는 속도가 더뎠다.

아보가 상대적으로 너무 빨리 자라다 보니 카도가 아버지 품에서 숨은 꼴이 돼버렸다.

이제 각방을 줘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한 달 만에 다이소에 또 갔다. 이번에는 모종삽까지 샀다.

집으로 돌아와 만반의 준비를 하고 화분에서 아보, 카도를 빼냈는데 뿌리가 서로 뒤엉켜있었다.

인삼 뿌리가 생각났다.

너희들은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참 잘 자란다.

우리가 미안할 정도로. 아보, 카도야.

요즘 내가 아보, 카도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카도가 잘 크지 않는다고

카도 잎사귀가 햇빛에 너무 노출돼서 탔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하면 아내는 웃으며 나한테도 아보, 카도 정도의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실까?

당신은 언제나 0순위야~ 무조건 무조건이지~

호야 1개

아보, 카도 2개를 키우는데도 

아침, 저녁으로 살펴보고 건조해 보면 물을 주고 

깍지벌레가 호야 줄기를 주스 마시듯 쭉쭉 빨고 있으면 제거해 준다.

하물며 식물 키우기도 이럴진대

고양이 1마리, 강아지 1마리는 식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많은 노력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기 1명은?

부모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자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희생하고 인내하고 걱정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가장 키우기 힘들고 어렵고 고된 순서로 나열하면

1명 > 1마리 > 1개지만

키우면서 가장 큰 희열과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것도 같은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호야, 아보, 카도

어쩌다 보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앞으로도 서로 촉감으로 파동으로 소통하면서 오래오래 함께하자.

너희들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제발~

매거진의 이전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