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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Aug 05. 2020

송강호 장르의 체계 Ⅰ

송강호 장르론_ 세번째

송강호 장르의 고유 양식


장르에 대한 이해는 데리다가 말한 장르의 코드, 즉 고유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장르 고유의 특성은 먼저 영화의 내러티브 구성 방식과 관계가 있다. 로버트 맥키(Robert McKee)에 따르면 장르는 자기만의 이야기 설계에 독특한 규칙을 갖는다. 이 규칙은 이야기의 특정한 설정, 역할, 사건, 가치 등 내러티브의 구성 요소들을 통해서 드러난다. 즉 특정 장르의 내러티브는 동일한 유형의 인물 설정, 플롯 구성, 사건의 해소 등의 공통된 특징을 갖는다. 


도상적 측면에서도 장르 고유의 특성은 판별될 수 있다. 토마스 샤츠는 장르의 도상을 가리켜 개별적 장르 영화 내의 용법이 장르 체계 자체와 연관성을 갖는 시각적 약호라고 설명한다. 영화의 내러티브 전달을 도우면서도 특정 장르 체계와 연결성이 있는 시각적 요소인 것이다. 마치 웨스턴 장르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하얀 말과 모자를 쓴 남자는 모든 웨스턴 영화들에 전유되어, 그 이미지의 등장만으로도 개별 영화의 캐릭터 설정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리하면 장르의 고유 양식은 영화 내러티브의 체계와 이를 전달하는 시각적 약호의 반복을 통하여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송강호의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내러티브 체계와 시각적 약호들을 분석하면 송강호 장르의 양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송강호 장르의 고유한 양식은 그의 첫 주연 작인 <반칙왕>(김지운 감독, 2000)에 의하여 이미 대략적인 틀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반칙왕>에서 송강호가 연기한‘대호’는 은행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지각도 자주하고, 실적도 저조하고, 부지점장의 헤드락 걸기에 괴롭힘을 당하는 대호의 모습은 우리네 보통 30대 회사원과 닮아있다. 서곡숙은 <반칙왕>의 대호를 가리켜 대기업이라는 규율 사회에 순종하는 육체라고 말한다. 부지점장의 헤드락 걸기는 거대 규율 사회의 핍박의 상징으로, 대호는 규율 사회 체계에 순응하고 핍박받는 인물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대호가 부지점장의 헤드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즉 사회 규율의 핍박으로부터 이탈하고자 레슬링을 배우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처럼 송강호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대체적으로 사회 제도권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복종하거나, 희생당하는 삶을 살아간다. 송강호는 사회의 중심부에 살아가는 기득권층의 서사보다 주변부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소시민의 서사에 더 부합한다.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감독, 2004)의‘한모’가 효자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며 중앙권력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것처럼, <괴물>(봉준호 감독, 2006)의‘강두’가 딸을 잃고도 공권력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송강호의 영화는 대부분 사회제도권 밖에서 연명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지영은 송강호 이미지를 담는 영화 서사의 특징을 분석하며, 송강호 이미지는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물을 창조하는데, 평범한 일상이 아닌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가치를 발휘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송강호의 영화는 평범한 사람에게 비범한 사건이 일어나는 내러티브 구조를 갖는다. 비범한 사건이란 사회 조직으로부터 발생되거나 우발적인 외부적 사건일 수도 있다. 아들이 중앙정보부에 간첩으로 잡혀가거나 괴물에게 딸을 납치당하는 일들이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사회 제도권에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건을 직접 해결하려든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소시민들이 욕망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송강호의 인물들은 대개 욕망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한 채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부지점장에게 복수하려다 결국 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대호, 아들이 장애인이 된 한모, 딸이 죽는 강두, 모두 실패로의 귀결이다. 


송강호 장르 양식의 도상적 요소는 송강호 특유의 유머코드가 깃든 웃음이라 할 수 있다. 주영하는 송강호의 웃음이 일상 속에 감춰져있는 빈틈을 느닷없이 파고드는 시적 진실성으로 관객에게 저항할 수 없는 친밀감을 안겨준다고 평한다. 송강호의 웃음은 그의 신체나 움직임, 얼굴표정, 말씨 등을 통해서, 즉 송강호 개인의 자질에서 기인한다. 등장인물을 위한 자원으로서 자기 자신을 사용하는 연기처럼, 도상 요소는 송강호의 연기 스타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물론 극중의 상황자체가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겠지만, 송강호의 익살스런 표정, 고음으로 올라갈 때의 얇은 음성, 사투리가 만드는 독특한 억양, 우스꽝스런 몸짓 등이 더해지면 웃음이 배가 된다. 특이한 점은 절대 웃음이 날 상황이 아닌 장면, 즉 극적으로 중요하거나 슬픈 장면에서도 웃음이 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괴물>의 강두가 경찰에게 딸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순간에“사망잔데요, 사망을 안 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예로들 수 있다. 강두에겐 심각한 순간인데 관객은 웃음이 새어나온다. 희‧비극이 공존하는 유머코드, 페이소스가 짙은 웃음은 오로지 송강호만의 전유물이다. 


더불어 송강호 장르의 영화에는 유독 송강호의 얼굴을 화면 가득 담는 클로즈업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벨라 발라즈는 클로즈업이 얼굴 근육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영혼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송강호 장르의 내러티브 체계가 소시민 삶이 극한에 다다르는 내용이기 때문에, 얼굴 클로즈업 이미지는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물의 페이소스 가득한 얼굴을 담는다. 관객은 송강호의 얼굴 클로즈업을 통해 강렬하게 분출되는 극중 인물의 욕망에 다가설 수 있다. 


질 들뢰즈에 의하면 클로즈업은 그 자체로 얼굴이고, 클로즈업된 얼굴은 그대로 감정-이미지가 된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얼굴을 양 극단의 성질을 나타내는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하나는‘욕망의 얼굴’로 강렬한 연속을 나타내고, 특질 사이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특질을 산출한다. 다른 하나는‘경이의 얼굴’로 반성하는 얼굴이고, 동요 없이 여러 특질들의 공통된 무엇을 표현한다. 즉 욕망의 얼굴은 내면의 욕망이 얼굴 밖으로 드러나는 운동형이고, 경이의 얼굴은 외부 감각의 지각에 의해 얼굴에 새겨지는 수용형이다. 송강호 장르의 페이소스 짙은 얼굴 클로즈업은‘욕망의 얼굴’에 속한다. 



종합하면 송강호 장르의 내러티브 체계는 소시민의 등장인물이 특정한 사건에 직면하고, 이를 직접 해결하는 서사 구조로 이루어진다.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욕망하지만 대개의 경우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내러티브 체계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배우 송강호 특유의 유머코드인 일상성이 담긴 웃음과 페이소스가 깃든 얼굴 클로즈업, 욕망의 얼굴 이미지 등의 도상 기호들이 등장한다. 관객은 도상 요소에 의해서 송강호 장르임을 분명하게 판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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