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만 싶은 아이들과 놀게만 둘 수 없는 엄마
2024년 1월 4일 낮 12시 조금 지났을 무렵,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아이들이 겨울방학식을 하는 날이다. 3교시, 급식 없이 하교. 덕분에 모닝커피 한 잔의 여유가 평소보다 더 빨리 끝나버렸다. 아이 목소리에 남은 커피를 원샷하고 아이를 반겼다.
"1호 왔어? 동생은? 같이 안 왔어?"
1호는 나의 물음에 사물함과 서랍 속 물건을 담아 묵직한 가방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으며 말한다.
"동생? 응, 운동장에도 없던데? 못 봤어. 근데 엄마, 나 물건 다 챙겨 왔어! 다 가져오느라 힘들었어. 그래도 빠트리지 않고 다 가져왔어. 나 잘했어?"
"그래, 고생했네. 잘했다."
"히히- 엄마, 나 그럼 옷 갈아입고 잠깐 쉬어도 돼? 유튜브.. 봐도 돼?"
"유튜브..? 흠... 오늘 학습지 할 거 있는데??"
"힝.. 놀고 싶은데..."
넉살 좋게 안기며 부드럽게 말하는 게 서툰 1호는 하고 싶은 맘을 숨길 수는 없고, 그렇다고 엄마를 설득하자니 안될 것 같았는지 말끝만 흐리고 말았다. 그런 1호를 보자니 이내 또 마음이 쓰여 아이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럼, 오늘은 방학했으니까 홈런이랑 온리원 학습만 하고 종이학습지는 빼줄까? 대신 패드 학습 먼저 다 하고, 오답노트도 빠짐없이 다 하고 나서 노는 거야, 어때?"
아이는 그제야 활짝 웃으며 기분 좋게 대답한다.
"응, 엄마! 알았어, 나 꼭 다 할게!!"
종이학습지가 없다는 사실이 그리도 좋을까. 덕분에 엄마 선생님도 휴식하는 날이다. 아차차, 선생님은 휴무여도 엄마는 밥을 해야 한다. 오늘 점심은 뭘 해먹이나? 방학 시작이니 이 고민을 50일 넘게 최소 하루 세 번을 해야 한다. 벌써부터 지치는 이 느낌... 너희가 알리가 없겠지. 점심 먹을 준비하려고 냉장고를 뒤적이고 있자니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키는 엄마의 절반을 넘게 따라왔어도 아직은 '아가'하고 싶은 2호가 왔다.
"오이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꼬이지, 꼬이지! 에잉~ 선생님하고 친구들이랑 작별인사 하느라 좀 늦었어어~"
"그랬군..!! 오늘 형아 덕분에 방학식 특별 이벤트로 종이학습지가 없어. 대신 홈런 학습 다 하고! 놀도록 해."
"오예~!!"
다시 점심 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가려는데 2호가 나를 불러 세운다. 아이의 부름에 돌아보니 한 손에는 연필, 한 손에는 얇은 책을 들고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엄마! 이것 좀 봐바. 이거 세상에서 딱 21개 밖에 없는 OO초 에디션 연필이야. 선생님이 주셨어. 그리고 이거는 우리 학급 앨범인데, 이거 앞에 편지는 풀로 붙여야 돼. 엄마가 붙여줘."
"우와, 정말? 우리 오이지 이름도 쓰여 있네? 선생님이 앨범도 만들어 주셨어? 2호는 진짜 좋겠다. 선생님이 이런 것도 다 만들어주시고."
"응응! 엄마, 나 이제 학습할게~ 편지 꼭 붙여죠오~"
뚝딱거리는 1호와 달리 2호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애교가 넘친다. 귀여운 녀석. 아, 그런데 점심 뭐 먹지? 애들 오는 거 반겨주고 상대하느라 벌써 2시가 다 되어 간다. 뭐 해 먹기도 귀찮고, 저녁도 아니고 점심이니까 가볍게 라면을 먹을까?
"얘들아, 점심으로 라면 어때?"
"어, 엄마 라면 좋아! 나는 참깨라면!"
"엄마~ 나는 삼양라면~~!"
".... 야, 늬들 하나로 통일 좀 하지..?"
"아~ 나 참깨라면 먹고 싶은데.."
"에잉~ 엄마 나는 삼양라면~ 그리고 치즈도 한 장 올려줭~"
"으휴, 귀찮게.. 알았어~"
"엄만 뭐 먹을 건뎅?"
"엄마? 엄마는 신라면-"
어차피 나도 통일 안 하는데, 애들한테 라면 종류 통일하라는 게 좀 웃기긴 하다. 그나마 내가 먹고 싶은 걸로 따라먹어주는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들 라면부터 끓여서 주고 나와 남편이 먹을 신라면을 끓여서 밥상에 둘러앉았다. 호로록호로록 면치기 소리, 복작복작 티비 소리, 중간중간 대화 소리, 여러 소리가 뒤섞인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향해 외쳤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방학 시작이니까, 내일 아침 먹고서 같이 생활계획표 짜는 거다?! 알았지?"
"에? 생활계획표? 아.. 그걸 왜.."
"아~ 방학숙제도 없는 데에~"
"그러니까 생활계획표를 짜야지! 그래야 학교 공부 복습도 하고, 예습도 하지. 대신 공부 다 하면 게임하고 놀 수 있어. 언제 공부하고 언제 놀지 같이 정할 거야. 오케이?"
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합창을 했다.
"응~ 알았어."
놀고만 싶은 아이들과 놀게만 둘 수 없는 엄마, 그렇게 동상이몽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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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Felice Wöl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