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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 막막 Mar 27. 2023

기억의 이야기(2/2)


ㄱ의 아내도 처음에는 그저 핸드폰을 바꾸고 싶어 성지를 찾았을 뿐이다. 앱스토어에 휴대폰 성지를 검색했을 뿐이고, 마침 자기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와 비슷한 앱을 다운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앱의 은밀한 기능을 곧 파악해버렸다.

ㄱ이 잠이 안온다고 호소하던 그날 밤, 무슨 생각 때문이냐고 되물어도 좀체 대답이 없는 ㄱ을 보며 아내는 앱을 실행시킬 수 밖에 없었다. ㄱ은 온갖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회사에서의 부적응 문제, 업무 실적에서의 부정적 피드백, 친구 없는 고립된 생활, 경제적 어려움, 앞으로 나아질 일이 없다는 부정적 인식 등등 ㄱ의 고민은 끊임없이 출력되었다. 일상을 공유하니 대강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깊게 빠져있는 줄은 아내는 미처 몰랐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ㄱ이 심리상담을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도 ㄱ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시간당 10만원이라는 것도 부담이 되었지만, 상담 과정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다. 상담 선생님은 ‘너의 어려움을 나에게 설득시켜봐’ ‘그래? 그건 아무 문제가 아닌데?’등 비공감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것이다. ㄱ은 10회 상담에 백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이고도 제발 제 사정 좀 알아봐 주세요 하고 읍소로 일관하다 상담이 종료되었던 것이다. 그 기억은 ㄱ에게 큰 상처가 되어 었었다. 또 특이했던 게 아내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다. 더 이상 이성적 감정을 느끼지 못했고, 애정이 식어버린 상태로 앞으로도 평생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 허망함을 느끼고 있었다. 멈춰있는 것 같아 보이는 촛불도 가만히 윗 공기를 보면 연소되는 중인 걸 안다. 그 연소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하다. 연료가 다 떨어진 촛불은 위태롭다.

아내는 참 쓸모없는 생각들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가 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들이 참 안타깝고 안쓰러웠지만, 그 정도는 누구나 다 겪는 일이고 ㄱ이 특별히 안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연애할 때도 느꼈었지만, 그의 현실 인식이 문제였다. 솔직히 이런 나약한 사람이었다면 결혼을 하지 말았었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자신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결혼 초기만 해도 아주 상전 모시듯이 귀하게 아껴주었는데 요즘은 짜증이 늘고 눈빛과 말투에서 느껴졌다. 나를 귀찮아 한다는 것을. 그래도 그녀는 이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본인이 좋으면 좋은거지,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그런 종속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다시 ㄱ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는 매번 새로운 우울감을 갱신하며 살고 있었다. 그때가 기분이 바닥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더 새로운 바닥을 팠고, 더 깊게 내려갔다. 나름 갱신이니 더 좋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생각에도 혈관이 있다면, 그의 혈관은 진즉에 터져버렸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생각뿐이었다. 보름달이 뜬 날이었다. 크고 노란 달을 보면서 같이 산책을 하던 중, ㄱ의 아내는 달을 보며 소원을 빌자고 했다. 예전에는, 건강한 아이를 갖게 해주세요, 경제적 부를 이루게 해주세요 등 소원을 빌었던 ㄱ였다. 그랬던 그가 처음으로 희한한 소원을 빌었다. ‘다 필요없고 오늘밤 죽게 해주세요’ 물론 생각뿐이었다.

보름달을 보고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거실에서 괴로워하던 ㄱ은 몰래 핸드폰을 들고 자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 가 그녀의 생각을 스캔했다. 그녀는 해피했다. 아무런 부정적 생각이 없었다. 이번 달 카드 값이 조금 걱정이었지만, 대체로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ㄱ은 믿기 어려웠다. 어떻게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이렇게 다르게 인식을 하고 있지? ‘나는 이렇게 힘든데, 집사람이 편한 대신 내가 이렇게 힘든건가’ 하는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그 생각은 자기가 생각해도 참 못난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평온함이 신기했던 ㄱ은 아내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사실은 내가 이러 이러한 생각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 좋겠느냐고. 이미 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던 그의 아내는 명확하게 진단을 내려주었다.

“과거의 기억이 너를 힘들게 하는거야”

과거에 부모님으로부터 공감받지 못했던 경험, 친구들로부터 버림받았던 경험, 돈이 없어서 힘들었던 기억 등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상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공감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누군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냉랭하게 굴면 저 사람은 나를 미워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과거의 기억을 끊어내고 현재를 살지 아니면 지금처럼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도 살지는 ㄱ의 선택이었다. ㄱ의 성은 ‘고’씨였는데, 지금처럼 살아서 古가 될지,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사는 Go가 될지는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었다. 그의 아내도 도와줄 수 있는게 없었다.

어떻게 그러게 평온한 생각을 하냐는 '고'의 질문에 아내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려주었다. ‘성지GO’ 앱이 업데이트 되었다고. 생각을 스캔하여 출력하는 기능만 있던 과거와는 달리, 자신이 원하는 생각을 입력하여 input 버튼을 누르면, 그 입력된 생각으로 하루를 살 수 있는 기능이 생겼다고. 그래서 자신은 그 날 하루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 갖고 싶은 생각을 떠올리며 하루를 산다고. 자신은 기억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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