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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Oct 29. 2019

시커먼 바다에 한번 안겨나 볼까요

버림 받은 자의 상실을 그린 허구(虛構)의 소설

'공감(空感)', 텅 빈 마음


    비 내리는 연평도의 방파제 위는 너무도 춥습니다. 기온이 순간 뚝 떨어졌네요. 그나마 저에게 따뜻했던 가을마저도 갑자기 찾아온 만큼이나 서둘러 제 곁을 떠나려나 봅니다. 가을의 온기가 떠나간 오늘은 공기마저 공허하게 느껴지고, 그 빈자리는 보훈처에서 받은, 방금 뜯은 엽서만이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건 무엇일까. 모든 게 내 곁을 떠나간 게 바로 그날 후부터입니다. 아직 잃은 게 없던 그 때의, 그 곳을 찾았습니다. 제 눈은 시커먼 바다를 향합니다.

"함장님,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함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날 그래도 나는 배에서 삶의 편에 있었습니다. '함미가 없다'는 말을 그 순간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조만간 구명쪼끼 입은 분들이 나를 부축해 언제 댔는지 모를 고속정에 데려가 앉혔습니다. 주황 보트는 조종실보다 더 크게 흔들렸고, 가끔씩 덮쳐오는 파도 때문에 제 몸은 지금처럼 추웠습니다.

    함미가 정말 없었습니다. 막 찢은 편지의 옆구리처럼 배는 너덜해져 있었습니다. 전역을 앞두고 이 년을 함께한 제 기억은 그렇게 저와는 떨어져 갔습니다. 자고 있던 후임들은 어떻게 된거지? 훈련소부터 함께한 내 동기는? 관물대엔 군 적금 통장이랑 읽다만 책도 있었는데. 함미의 기억이 송두리째 잘려저 나갔습니다.

    스물 둘의 어렸던 나는 그 배가 세상의 전부인 양 살았습니다. 잠 자고 먹었으며, 부대원이 만나는 사람의 전부였고, 전역을 앞두고 공부하던 자리였습니다. 그 모든 게 다 어디갔냐, 전 물을 겨를도 없이 배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이 고속정을 운전하는 사람이 그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은 표정이었습니다. 적어도, 배로부터 빠르게 멀어지는 고속정 때문에 전 함미에 있던 전우 모두를 떠오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전우들은 제 기억에 있고도 없는 자들이 됐습니다. 꿈 속에 나타난 그들은 눈두덩이며 손과 발까지 물로 불어 터져 있었습니다.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복잡하게 얽힌 심정 때문에 그들을 떠올리고 싶어도 악몽으로 이어진 두려움 때문에 이내 포기하곤 했습니다. 이젠 엘레베이터나 버스도 타지 못합니다. 제 뒤로 빈 공간이 있으면 물에 불은 죽은 자들이 절 끌어내리려는 것 같았습니다. 두렵다가도 미안한 마음에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미칠 듯 복잡한 마음에 저는 더 안으로 쪼그라들었고, 제 삶은 고독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도 결국은 '등급 기준 미달'인가 봅니다. 보훈처가 오늘 보내온 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고통은 인정하지만 유공자로 국가가 책임질 수준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목숨 바쳐 희생한 국가로부터도 외면 받았습니다. 제 곁엔 그 무엇도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길 잃고 떠돌던 발길은 아직 아무도 떠나기 전 바로 그 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날 밤 전우들을 삼킨 바다에 나도 한번 안겨나 볼까요.



작가의 말

이 글은 주제어 '공감'을 가지고 언론고시 스터디에서 쓴 작문 글입니다. 명확한 뜻을 정의하지 않은 단어 '공감'을 '공감(空感)', 즉 '텅 빈 마음'으로 정의내려 썼습니다.

글의 끝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앞 길을 고민합니다. 자살을 염두하고 있습니다. '자살'을 고민하는 자에 대해 사회가 연민하면서도 내심 그를 경멸한다는 복잡한 감정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자살'을 장치로 쓰기까지 수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 글은 제 상상을 빌려 쓴 순수한 허구입니다. 전하려는 바를 위해 최적의 상황을 제 뜻대로 조성할 수 있는 게 허구의 장점일 것입니다. 제 손을 떠난 글은 더 이상 제 것이 아니겠습니다만, 버림 받은 자의 상실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자살'이란 장치를 썼습니다. 허구의 글이 주제를 전하기 위해 사용한 장치라 생각하시고, 너무 안 좋게만 보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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