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 Jul 16. 2021

무기력증을 한 방에 날려버린 급성신우신염

먹고 잘 수 있다는 오늘의 사치. 아프기 전엔 몰랐지


이것은 작년 자궁근종 수술 전 이야기.

(방광염과 관계있는 급성신우신염, 근종의 전조증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체 작년 후반부는 왜 이리도 병원행이 잦았던 걸까? 브런치에 올려놓은 글들을 보면 죄다 근종, 건강, 감정에 대한 피로감 뭐 이런 얘기들이다. 아직 글이 10개밖에 없어서 더 한데, 보고 있자니 축 처지는 느낌이다. 아팠던 이야기들을 부지런히 다 올린 뒤, 차차 일상 이야기를 섞어서 업로드해야겠다.



작년 추석- 안 그래도 힘든 나날을 보내던 나. 코로나 시국에 활달한 조카들을 놀이터에서 꽤 신경쓰며 봐주고 난 뒤, 이름도 생소한 급성신우신염에 걸렸다. 신우신염 이전의 나는, 집에 벌어진 큰 일을 겪으며 지내다 극심한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던 상태였다.





맑고 파란 하늘, 시원한 날씨,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맛있는 식사와 커피까지. 모든 게 완벽 그 자체였던 어느 날, 그 완벽함 가운데서 딱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기력증이 심해서였는지 아무 의욕도 없었고 이대로 삶이 끝나도 전혀 상관없을 기분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거실 바닥에 표류하는 해파리처럼 마루와 소파에 가만히 누워 지냈다. 파란 하늘 너머 투명한 거실 창 아래로, 재밌는 것도 맛있는 것도 화나는 것도 없던 내가 누워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건강한 몸에 대한 감사를 잃었던 탓일까. 이유를 알 수 없는 채로 심하게 아팠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급성신우신염에 걸리면 대부분 응급실로 향하고, 입원까지 하던데. 나는 평상시에 병원과 그다지 친하지 않던 사람이어서 어디가 왜 이렇게 아픈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고, 어느 병원으로 향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스쳐가는 몸살을 세게 겪는다는 생각뿐.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몸살 증상에, 이비인후과에서 소견서를 써주셔서 코로나 검사도 받아보았다. 면봉으로 코가 쑤셔짐과 동시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검사 결과는 당연히 음성이었다. 코로나가 아닌 건 다행이었지만, 또 다시 원인불명.



사람이 이렇게 잠을 못 잘 수가 있나..? 당연하지! 급성신우신염에 걸리면 구토, 오한, 발열로 음식 섭취가 힘들다. 그래서 다들 링거를 꽂아 영양분과 약을 투입하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걸, 걸린 지 2주가 다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이유를 몰라서 꼼짝없이 집에서 혼자 앓았던 것이었다. 앓는 기간 내내 먹은 것은 그대로 다 토해냈고 타이레놀에만 의지했다. 낮에는 가까이 사시는 엄마가 오셔서 돌봐주셨는데 보는 엄마도 원인을 모르셔서 많이 속상해하셨다. 우린 헛다리를 제대로 잘못짚었고, 급성신우신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병원들만 계속 향했다.




그래도 항상 밝으시던 엄마. 어느 날 이비인후과에서 링거를 맞던 나를 뒤로 하고 갑자기 백화점에 커피나 받으러 가야겠다며 가방을 챙겨 일어나셨다. 나는 그저 속으로 '역시 엄마는 세구나. 나도 크게 생각하지 말자. 그저 몸살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몽롱한 기운으로 축 늘어져 누워서 엄마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 엄마는 불안한 마음에 백화점이 아닌 바깥 산책로를 아주 오랫동안, 한참 동안 걷다 들어오셨다. 어떤 생각으로 걸으셨는지 그 마음을 듣고 나서 고개를 돌려 눈물을 삼켰지만 집에 돌아와서 하나도 낫지 않은 몸에 두려워하며 많이 울었다. 결혼하고 나서 엄마의 마음에 짐을 더하는 건 마음이 심하게 아프다.


이후 링거를 맞아도 원인불명으로 치솟는 열에 또 다른 소견서를 받아 결국 대학병원의 감염내과로 향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외래 진료를 한 번 더 거치며, 급성신우신염인 것으로 판명을 받았다.




너무 아프고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에 비틀비틀 걸어 나와 부엌 정수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따뜻한 물을 연신 마시면서 많이도 울었다. 이유를 모르고 아픈 건 정말 무섭다. 괴롭고, 또 답답했다. 타이레놀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이 끝나면 바로 통증이 시작됐다.





사람이 참 나약하고 간사하다는 걸 느꼈던 시간. 막상 진짜 죽을 것처럼 이유도 모른 채로 2주 넘게 홀로 앓다 보니, 정말 이대로 갑자기 죽어버릴까 봐 너무 두려웠다. 무기력증일 땐 될 대로 되라지 마음이었는데, 잠시 눈을 붙이고 떴을 때 또 통증이 올까 봐 두려워하는 나를 보니 헛웃음이 났다.




나를 염려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 둘 달처럼 두둥실 떠오르는 밤. 그저 건강하기만 해도 효도이고 기쁨이라는 게 절실하게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가족과 따뜻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느껴졌다.




이렇게 죽을 듯이 아프고 나서 자궁 근종 수술까지 한 작년. 작년 하반기는 병원 투어로 다 보낸 느낌이다. 그래서 작년에 그렇게 많은 생각과 다짐을 했는데도, 나는 아직도 참 나약한 인간인가 보다. 감사를 잃는 순간은 지금도 종종 찾아온다.


그러나 그조차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게 너무 평안하고, 너무 감사하고, 너무 완벽하다면 나는 그림으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감정들을 다 겪어내고 성장하면서 솔직한 그림일기를 그리는 게 내 목표이고 바람이다.


윤여정 선생님처럼 솔직하고 근사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어른으로 나이들면서 오래오래 그림을 그리고 싶다. 오래도록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살도록 노력해야지.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글과 그림을 많이 만드는 삶, 상상만 해도 행복해지는 삶이다. 무기력증이 다시 온다해도 전처럼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다. 스쳐서, 흘러서 지나가도록 조용히 바라봐줘야지. 그렇게 소란없이, 조용히 머물다 가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