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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Aug 23. 2021

딱딱하게 굳은 살은 속에 감추니까



어느 날 밤, 창문을 열어놓고 솔솔 불어오는 밤 내음을 맡으며 그림을 그리던 중, 키썸(KISUM)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좋아하는 플레이 리스트가 랜덤으로 재생되고 있었는데, 키썸의 노래는 꽤 여러 곡이 껴 있어서 종종 흘러나온다.

밤 내음에 실려오던 노래 <100%>의 가사.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음미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인지 오래도록 플레이 리스트에 남겨두는 곡은 다 이유가 있다.









키썸의 많은 노래를 좋아하지만, <100%> 외의  <옥타빵>도 참 좋아한다. 같은 상황과 같은 길은 아니지만,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누군가의 마음이 솔직하게 담겨있어서 참 좋다. 위안이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거나, 그냥 즐기면 되는데 왜 힘드냐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처한 상황과 마음의 한계치가 다른 것이고, 자신이 좀 덜 힘들다면 그 단단한 마음의 근육에 감사하게 여기면 될 일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과 시간을 쌓아가는 일도 힘든 날이 없진 않은데, 일이야 오죽할까? 싸움이 없는 편인 남편과의 부부생활에서도 힘든 날이 있는데.

원하던 곳에 오를 때까지, 아니 오르고 나서도- 힘든 날은 분명히 있다. 그를 극복하는 마음가짐이 즐기는 마음을 만드는 것뿐. 그리고 나도 그런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완전히 다른 일로 진로를 틀어본 적은 없다.

어떤 일을 하고 있어도 다 그림이라는 큰 그룹 안에서 고르고 체험하고 일하고 움직였다. 딱 한 번, 틀어볼까 하고 갈림길에 서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림이 자꾸 나를 불렀다.

뭐가 좋냐고 묻는다면-

그냥 태블릿에 펜촉이 닿는 순간 그 자체가 좋고, 화면 위로 뻗어나가는 선들이 좋다. 키보드 위에서 하고 싶은 말을 떠들며 내는 타자 소리가 좋고, 색을 칠하고 머릿결을 그리는 그 순간이 좋다. 마음을 그리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행위는 당연히 엄청나게 짜릿하고 나 스스로에게도 위안이 되니 말할 것도 없다. 그 외에 그림을 위한 단순한 행위조차도, 그냥 좋다. 그래서 자꾸 그림으로 돌아간다.

때려치워! 싶다가도- (미혼이던 시절)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옛 연인처럼 자꾸 생각나는 묘한 존재.





쉽게 해내고 싶지만 맨날 쉽진 않다. 말도 안 되는 부분에서 심하게 막히는 날도 있다. 뚜렷하게 이뤄낸 것이 없을 땐 그림이 막힌다는 얘기도 하기가 어렵다. 취미생활을 너무 진지하게 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하지만 그림은 내게 취미 그 이상의 존재이다. 그림으로 밥벌이를 할 때도 그랬고, 정말 취미로만 그릴 때도 그랬다.


그런 순간, 키썸의 노래 가사처럼 누군가의 솔직한 고백이 나를 북돋아준다. 좋아하는 일이, 그 사람에겐 이미 궤도에 오른 것 같은 그 일이 꽤 힘들었으며 여전히 힘들다는 그 고백.









후련하다. 나는 꺼내기 어려운 그 말을, 내 눈에 멋진 사람들이 시원하게 꺼내 줘서 위안이 된다. 잘하고 싶어서 힘들다는 게 부끄럽지 않게 느껴진다. 나 혼자 열심히 달리는 이 길이 바보 같아 보이지 않아서 좋다. 앞으로도 힘든 날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으며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버거운 날이 와도, 뭐 그런 날도 있지. 다 그렇게 사는 거야. 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어.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렸던 그림이, 남을 위로하는 이야기로 바뀌었고, 그는 다시 나를 위로하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인스타도 블로그도 브런치도 결국은 내가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고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연구실처럼 느껴진다. 아마 꽤 오랜 시간 나의 성장일기, 성장 기록이 만들어지겠지? 마치, 내가 나를 장기간 연구하는 이 기분. 그런데 그것이 밥벌이로도 이어진다니 놀랍고도 감사하다.


너무 무거워지진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너무 가벼워지지도 않고. 오래도록 뚜벅뚜벅 걸을 수 있도록 적당히 비워내고 적당히 채워가야지. 그렇게 흐르듯이 여러 결을 경험하며 살 것이다. 늘 생각하지만, 모든 과정을 겪어내며 정말로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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