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춘) 인스타툰을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
계정을 만들고 열심히 부릉부릉 달리다 잠시 멈춘 인스타툰. 브런치와 인스타툰, 블로그 모두를 꾸려나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은 여기에 더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새로운 블로그를 실험 중이다. 간간히 작가님들께 걱정 어린 안부 메시지를 받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세간살이를 다 버려두고 집을 나간, 아니 도망친 느낌이랄까?!
금세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요즘은 콘텐츠 계정을 간소화하는 것을 고민 중이다. 나에게 어떤 성격의 플랫폼이 맞을지 끊임없이 실험 중인데, 브런치는 왠지 계속 가져가지 않을까 싶다. 인스타보다 교류는 덜하지만, 그냥 담담하게 마음을 풀어 적어 내려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그렇게 담담하게 마음을 풀어내시는 분들이 아주 많은 곳. 진솔한 글을 쓸 수 있는 곳. 그래서 좋다.
그래도 인스타그램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던 곳이었다. 인스타툰을 시작했던 곳이니까. 잘 그리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솔직한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는 연습을 하게 해 준 곳. 따뜻한 분들을 아주 많이 알게 해 준 곳.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 곳.
그런 인스타툰을 그리려 했을 때 나를 제일 먼저 가로막던 것은, 나를 끊임없이 치던 것은, 내가 제일 많이 부딪히던 것은 잘 그리려던 마음이었다. 이 아주 쓸데없는 마음은 미대 입시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미대 입시를 겪었으니 투시에 민감하고, 완성도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감수성 풍부한 10대 후반에 선생님들의 비난 폭격을 받으면, 이렇게 스스로 깐깐해진다. 게다가 대학에 가서는 어도비 프로그램을 통한 노동으로, 1픽셀의 엇나감에도 어딘가 찝찝하다며 눈을 부라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림에 깐깐징어 어른이 되어버린 나인데, 인체를 못 그리는 내가 인체를 그려야 한다니! 사람을 완벽한 비율로 그리는 건 둘째 치고, 그냥 캐릭터처럼 귀엽게 그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며! 왜 그리질 못하니! 저 작가님들은 저렇게 귀여운 그림으로, 저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아이패드는 왜 산거야!
그러던 어느 날 귀찮작가님의 인스타툰 강의를 알게 되었다. 맛보기 강의를 좀 보다가 홀린 듯이 결제를 시작했다. 그리고 강의를 들을수록, 고구마가 줄줄이 얹힌듯하던 내 마음속에 사이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아무것도 못 그리는 사람의 마음으로 시작해보는 거야! 남한테 보여주려는 그림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로하는 그림을 시작하는 거야. 못 그린다고 기죽지 말자. 스토리가 훨씬 중요한 걸? 사실 이 부분은 창작을 하는 모든 분야에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진정성 있는 메시지의 중요성.
나는 더 이상 입시생이 아니다. 글과 그림에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부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완벽한 겉치레가 아니라 알맹이가 되어야 한다. 영어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해외여행 중 열심히 머리를 굴려 문법을 떠올리며 소심히 내뱉는 나보다 단어를 대충 던지는 남편의 회화가 훨씬 잘 통한다. 그는 속시원히 자신의 의사를 전달해 원하는 것을 받고, 나는 고민은 고민대로 해놓고 원하는 걸 받지 못한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보이는 말이 아닌, 하고 싶은 말을 해!
나를 위로하고 나를 울리는 이야기가 남에게도 진정성 있게 닿는다는 것. 그것을 잃지 않으면, 식어가는 마음 한 켠에 작은 불씨 하나가 다시금 스르륵 지펴진다. 잘하려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진심을 담으려는 마음과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