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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l 05. 2021

나를 조각내며 유지할 관계는 없어

그렇게까지 해서 사랑받을 필요는 없잖아-



30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은 무수히 많지만, 몇 가지 뚜렷한 변화 중 하나는 인간관계이다.



어렸을 땐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맞춰주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춥고 허전한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좀 더 잘해주면 저 사람도 행복하겠지- 라는 교만한 생각에 만남을 유지하며 내 것을 퍼주었다.




내 것을 퍼주면서 남을 변화시킨다는 건 정말 특별한 사람들 외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 그 혼자만의 퍼줌이 결국 나를 고갈시켰다는 걸 늦게서야 알았다. 




나와 결이 맞지 않는 걸 넘어서서 이상하단 생각, 싸하단 생각이 드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때 느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누군가를 위로한답시고 모든 에너지를 쏟고 와 잔뜩 까칠해져서는 가족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만을 발산하고 있다니.

연인, 회사 사람, 친구들- 무수한 관계들에서 가끔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에게 착한 사람. 그런 사람, 정말이지 내가 하고 싶었는데. 그것은 나의 욕심이었다.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 만든 짙은 외로움.



결국 내가 날 사랑하지 못해서였다. 남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나를 조각내어 가며 누군가의 빈틈을 메꿔주고 사랑받으려 애썼다. 그럴 시간에 나부터 먼저 아껴주고 사랑해줄걸.



내 마음이 건강해야 남에게도 퍼줄 수 있다. 나 자신이 정신도 못 차릴 정도로 피폐해져서는 또다시 그 피폐함의 원인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건 불가능했다. 사랑이 돈이라면, 사채를 받아서 이미 배부른 누군가에게 자꾸 퍼주고 가져다주던 격이었다. 외로움에 잔뜩 얻어맞으면서.




사람 관계를 끊는다는 것. 서서히 멀어진다는 것. 모두 힘든 일이다. 나는 누군가와 트러블을 만드는 것을 아주 피곤하게 여기는 편이라 더 쉽지 않다. 그래도 이제 30대 중반에 가까워지니 관계라는 것이 어렸을 때보단 수월하고 편안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맞춰줄 필요도, 잘해줄 필요도 없다는 것. 그렇다고 오버스럽게 까칠할 필요도 없다. 그저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대로 관계에 임할 것.


친해진 인연들, 더 알고 싶은 사람들(어떤 공동체 없이 이 나이대에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건 무척 귀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내 마음을 보여주고 가까워지고- 아닌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그만큼 다가와주는 소중하고 선한 인연들을 별처럼 보석처럼 소중히 대하는 것. 자연스럽게 떠나가는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 다가올 때가 되어 다가와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준 후, 이제 떠날 시기가 되어 떠난 인연일 뿐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들이 온다는 말, 그 말을 20대 후반의 나에게 해주고 싶다. 회사에서도 밖에서도, 그 어디에서 만난 사람이라도- 너를 아껴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애쓰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깝다는 것. 그 소중한 마음, 다가올 수많은 좋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에도 부족하니 지금은 너를 더 사랑하고 네 마음을 좀 더 돌보라는 것. 그래야 더 좋은 사람들로 채워지며, 자연스레 허무한 관계들이 밀려나간다는 것.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나 자신에게 가야 할 그 소중한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 특히 자존감 도둑들에게. 현재의 나는, 나를 먼저 사랑해주려 애쓴다. 애쓴다는 말은, 나를 사랑하는 행위 역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 나를 소중히 여기고, 차오른 마음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다가와주는 소중한 인연들을 사랑하고.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란 세상, 오래도록 사랑하고 나누며 살고 싶다.

사랑을 주는 것에 있어서 아낌이 없는 따스한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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