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의 상암르네상스] 글. 김태륭
서울은 지금 누구보다 간절하게 뛰어야 한다.
최근 5경기 연속 무패, 올 시즌 인천을 상대로 두 번 의대승, 그리고 하대성과 이명주의 복귀까지.
서울은 제법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를 시작했지만 종료 후에는 그 누구도 웃지 못했다. 88분에 터진 인천 송시우의 결승골은 경기 내내 보여준 인천의 헌신에 대한 보답이었다. 90분 동안 서울이 기록한 점유율은 57%, 하지만 실제로 경기를 점유한 것은 서울이 아닌 인천이었다.
서울은 앞선 경기에서 하대성, 이명주가 부상에서 복귀한 반면, 인천은 코어라인의 핵심 한석종과 하창래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했다. 경기 전 확인한 서울의 선수 명단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사실 인천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제한적이었다. 인천은 문선민, 웨슬리, 김진야를 스리톱에 배치하며 속도전을 노렸다. 서울 역시 발 빠른 황현수와 칼레드로 센터백 조합을 구성하여 대응했다.
사실 미드필드 싸움에서 서울이 손쉽게 리드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제주 전, 복귀한 하대성의 폼이 생각보다 괜찮았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다른 선택의 수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천이 한석종의 공백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오스마르-하대성-이상호가 조합을 이룬 서울의 미드필드는 기대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모든 경합 상황에서 두려움이 없었고 압박 속도는 빨랐으며 서울보다 한 발 더 뛰었다. 특히 인천의 스리톱은 공격보다 수비 상황에서 위력적이었다. 인천은 결코 90분 내내 수비라인을 내리지 않았다. 서울의 골킥 상황, 혹은 수비 라인에서 패스의 스윙 속도가 느린 경우에는 거침없이 전방 압박을 시도했다. 의욕 넘치고 발 빠른 인천의 스리톱은 서울 수비수들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 접근하여 빌드업을 방해했다.
어려움은 오스마르가 겪었다. 팀의 기점이자 핸들을 쥐고 있는 오스마르는 평소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인천이 전방 압박을 하는 상황에서는 좋은 위치에서 공을 받지 못했고, 인천이 후방에서 견고한 수비 블록을 쌓았을 때는 좀처럼 영양가 있는 전진 패스를 보내지 못했다.
오스마르의 어려움은 곧 서울 중원 전체의 고민으로 이어졌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듯이, 한 칸 뒤에서 좋은 패스를 받아야 한 칸 위로 좋은 패스를 보낼 수 있다. 수비에서 오스마르로 이어지는 선이 불안정하면 한 칸위의 하대성, 이상호도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인천의 활발한 스리톱이 정적인 서울의 코어라인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경기 영향력과 달리 볼 점유율은 서울이 높았지만 측면은 인천이 차지했다. 문선민과 김진야의 침투는 서울의 베테랑 풀백 신광훈과 김치우의 전진을 방해했다. 서울의 풀백은 좀처럼 과감하게 올라오지 못했는데 이는 중원에서 충분한 경기 장악력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드필드에서 경기를 제어할 수 있다면, 풀백은 과감하게 공격에 힘을 보탤 수 있다. 하지만 인천의 측면은 속도 면에서 서울보다 나았다. 김용환의 오버래핑, 최종환의 크로스 역시 서울의 풀백들이 머릿속에 두어야 할 옵션이었고 윤일록, 코바는 수비 전환 상황에서 영리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서울의 풀백들이 ‘안’ 나갔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못’ 나갔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전반 34분, 코바가 부상으로 경기장을 떠났다. 교체 투입된 고요한이 중앙 미드필더로, 이상호는 우측 윙어로, 윤일록은 좌측 윙어로 재배치됐다. 이상호는 2선 모든 자리를 소화할 수 있지만 측면에서 중앙을 오가는 동선보다는 중앙에서 측면을 오가는 동선에서 더 빛난다. 뿐만 아니라 이상호와 윤일록이 서로 직접적인 패스를 주고받는 거리에 있을 때, 서울의 좋은 콤비네이션이 만들어진다. 갑작스러운 부상에 따른 교체였지만, 고요한 투입과 동시에 이루어진 재배치에서 서울은 별다른 효과를 만들지 못했다.
후반 14분, 칼레드 대신 이명주가 투입됐다. 오스마르가 수비로 내려오면서 중원 조합은 하대성-이명주-고요한으로 꾸려졌다. 이전보다 중원에서 공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노자-채프먼으로 이어지는 인천의 코어라인은 꾸준히 견고했고, 인천 전용구장의 짧은 숱이 적은 잔디는 서울 미드필더들의 세밀한 볼터치와 전방으로 보내는 키 패스의 강약 조절에 어려움을 제공했다.
황선홍 감독은 후반 31분, 박주영을 투입하며 한방을 기대했지만 박주영이 인천 전에서 달성한 기록은 FC서울에서의 200번째 출전이 전부였다.
지난 시즌에도 그랬다. 앞선 두 차례 대결에서 서울이 승리했지만 9월, 세 번째 대결에서는 인천이 승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9월의 인천은 절박하다. 최하위 광주와 승점 차이는 있지만 11위 상주와의 경쟁, 그리고 스플릿 이후의 스케줄을 고려하면 절박함의 이유를 알 수 있다.
90분 내내 모든 상황과 장면에서 이를 악문 인천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경기에 출전한 부노자, 김도혁, 웨슬리는 주선 선수들의 공백을 지운 것은 물론, 그 보다 나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절박한 인천이 강하게 나올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인천의 강함을 서울의 부드러움이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절박함의 크기가 예상보다 훨씬 컸다.
현실적으로 상위 스플릿에 대한 걱정은 없지만 ACL 출전권에 대한 고민은 크다. 스플릿이 시작되기 전 네 경기, 모두 서울보다 순위가 낮은 팀과의 대진이다. 서울이 계속해서 승점을 잃는다면 내년 시즌 국내 대회만 치러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인천은 절박함을 내세워 서울에게 승점 3점을 따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인천만 절박함을 가져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