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의 상암르네상스] 글. 김태륭
황선홍 감독의 고민이 깊어간다.
앞서 대승을 거둔 광주 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박주영, 윤승원, 주세종을 다시 앞세워 선발 라인업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지만 이번 포항 전은 승점 1점에 그쳤다. 마지막 10분은 치열한 백병전 양상으로 흘러갔지만 전체적인 경기 흐름상, 서울은 마지막 순간의 백병전을 피할 수 도 있었다.
인천과 무승부를 기록한 4위 수원과 승점 차이는 여전히 4점, 그리고 이제 스플릿 라운드까지 이제 단 두 경기 남았다.
서울의 시작은 괜찮았다. 1분 만에 첫 코너킥을 만들었고 공격 전개 과정도 좋았다. 간간히 포항이 공격을 시도했지만 위험 지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서울은 14분 만에 첫 골을 성공시켰다. 과정이 있는 전개로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만들었고 골대를 맞고 나온 박주영의 슈팅을 오스마르가 마무리했다.
그 상황을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슈팅 후 세컨볼에 대한 준비는 분명 서울 쪽이 잘 되어 있었다. 오스마르 또한 박주영의 프리킥 슈팅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미리 생각했기에 빠르고 침착한 2차 슈팅이 가능했다.
반면 최근 수비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포항 수비의 대응은 최순호 감독을 슬프게 했다. 수비 입장에서는 상대에게 슛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상대 공격수가 슛을 시도할 때 골키퍼만 바라볼 수는 없는 법. 골대 근처에 위치한 수비수들은 두 가지 동작을 행해야 한다.
첫 번째, 슛이 골대로 연결되는 각도를 가능한 많이 차단해야 한다. 상대 공격수 앞에서 슛을 블로킹할 수 있는 거리라면 몸을 던지는 적극성도 필요하다. 만약 슛 지점과 거리가 다소 있다면 한쪽 코스만 확실하게 차단하여 골키퍼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마치 프리킥 상황에서 벽의 역할과 같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골키퍼는 확률상 시야가 확보된 쪽에 자신의 수비 범위를 집중시킨다. 반대 각도를 차단해야 하는 것은 슛을 블로킹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수비수다.
두 번째, 세컨볼에 대한 준비다. 상대 공격수의 슈팅이 발생하는 순간, 대부분 수비수들의 두 발은 지면에 닿아있다. 하지만 한두 명의 수비수만 슈팅 이후 상황에 대비하여 준비한다면 골키퍼의 세이빙 또는 골대를 맞고 나오는 상황에서 실점을 예방할 수 있다. 슈팅 후 세컨볼은 시야가 보다 잘 확보된 공격수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미리 중요 지점에 한두 명의 수비수가 들어가 있다면 한 발의 차이로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전반 20분 동안 서울의 리듬은 준수했다. 60%의 볼 점유율을 기반으로 경기를 주도했고 이 시기에 터진 오스마르의 골은 서울에게 편안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20분을 기점으로 남은 70분 동안 서울은 애매한 경기 리듬을 유지했다. 한 골의 리드가 제공한 안락함인지, 아니면 시간 흐름에 따라 아주 미세하게 경기 영향력을 향상한 포항의 공격이 그다지 날카롭지 못했기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포항은 전반 중반 이후 경기를 주도했다. 포항은 하프타임에 52%의 볼 점유율을 기록하며 서울보다 공을 더 오래 소유했지만 지공과 속공 모든 부분에서 날카롭지 못했다.
그래서 사실 서울에게 전반전은 편하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오스마르의 골 이후, 서울은 무게 중심을 내렸고 수비-미드필드-공격 선의 간격을 잘 유지하며 포항을 상대했다. 때문에 포항은 측면까지는 어렵게 진출했지만, 이후 다시 공을 중앙 지역으로 투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포항의 크로스는 곽태휘의 머리를 넘지 못했고, 서울의 센터백과 중앙 미드필더 사이에서 공을 받기 위해 노력한 룰리냐는 힘을 쓰지 못했다.
서울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전반을 마쳤다. 포지셔닝에 근거한 수비는 꽤 안전했고 스코어나 벤치 상황 등 후반전 서울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포항보다 훨씬 다양했다.
서울은 세 명의 미드필더 조합과 거기서 나오는 능력에서 포항보다 우위에 있었다. 특히 공을 갖고 있을 때의 선택에서 차이를 만들었다. 빠르게 갈 때와 느리게 갈 때, 그리고 패스를 전방으로 보낼 때와 측면 혹은 후방으로 보낼 때의 선택이 포항보다 나았다. 그렇기 때문에 후반전, 포항의 풀백 강상우의 전진이 시작되고 전체적인 중심이 전방으로 향하며 볼 점유율도 높아진 포항을 상대로 오히려 실속 있는 경기 운영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서울은 한 골 더 달아 날 수 있었고, 그렇게 했어야 했다.
후반전, 이명주와 윤일록이 연달아 교체 투입됐다. 공은 여전히 포항이 더 오래 갖고 있었지만, 오히려 서울 중원의 탈압박 능력이 기반이 된 역습 장면을 기대할 수 있었다. 물론 박주영, 이명주가 한 차례씩 위협적인 슈팅을 시도했지만 기대한 것처럼 잘 만들어진 역습이 아닌 포항의 실수에서 비롯된 장면이었다. 오히려 후반전 시간이 지날수록 포항의 날카로운 공격이 서울의 골문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후반 35분, 완델손의 동점골이 터지기 전 다소 애매하게 흘려보낸 서울의 리듬이 아쉬웠다. 전반전은 잊더라도, 후반전 시작 이후 35분까지 서울의 경기 리듬과 템포는 일정했다. 한 번쯤 시간대를 지정해서 과감하게 전진했다면 어땠을까?
미세하게 공격력을 발전시킨 포항도 후반 30분이 지나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최순호 감독도 이상기, 서보민을 투입하며 변화를 꾀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축구에서 전술과 전략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풀어내는 것은 개인이다. 왼쪽 측면에서 신광훈과 고요한의 협력 수비와 대치했던 완델손이 개인 능력으로 서울의 골문을 통과했다.
협력 수비는 두 선수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상대 공격수와 가장 가까운 첫 번째 수비수는 압박, 두 번째 거리에 있는 수비수는 커버를 담당한다. 보통 측면에서 대치 상황이 되면 수비수들은 상대에게 측면을 열어준다. 자연스럽게 터치라인 쪽으로 상대를 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볼터치가 불안하다면 이 때는 곧바로 압박해야 하지만 완델손은 자신의 발 밑에 안전하게 공을 잡아두고 있었다. 신광훈과 고요한 모두 완델손이 왼발을 사용하기에 돌파에 대한 가능성을 염두했을 것이다. 하지만 완델손의 사전 스텝과 순간적인 속도 변화가 예상보다 빨랐고, 돌아 뛰려 했던 신광훈의 마지막 스텝은 잔디에 미끄러졌다. 이 한 스텝은 큰 차이를 만들었다. 신광훈도 뒤쳐졌고, 뒤에 있던 고요한도 커버 타이밍을 잃어버렸다.
협력 수비 상황이 만들어지면 확률상 수비가 유리하지만, 심리적 또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오히려 공격수가 예상 밖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스플릿 라운드까지 포함해 7경기 남은 지금 3위 울산과의 승점차는 10점.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아직 가능성은 열려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최우선 목표는 다음 시즌 ACL 출전이다. 수원과 울산이 FC컵 준결승에 진출했기에 승점 4점 차인 4위 수원과 리그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무엇이 되었든 리그에서 모든 승부를 걸어야 한다.
갖고 있는 카드는 많다. 하지만 무언가 흐름이 좋지는 않다. 이명주와 하대성이 최근 부상에서 복귀한 것은 다행이지만, 경기를 보면 약간 복귀 시기가 빠른 느낌도 있다. 두 선수에게 앞으로 추가적인 통증이 없다는 가정 하에, 긍정적인 부분은 그래도 경기를 치를수록 두 선수의 경기력은 향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