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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onface Mar 02. 2021

10월은 그렇게 간다_4

04. 천천히 가면 안될까요? 

병원 응급실을 향해 서둘러 움직이는 택시 밖은 조급해져 가는 그녀의 마음과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일상의 평범함을 누리는 이들의 시간이 이 투명한 유리 경계로 다른 시간의 축으로 돌아 가는 것 같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내쫓으려 택시 아저씨에게 살가운 사람마냥 추석 안부를 물으며 병원을 가는 정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택시 탈 때 보니 별거 아닐 거예요." 아저씨의 한마디에 보이지 않는 불안 속에 기울어져 가던 그녀의 마음을 다잡는 마법의 주문처럼 따라 외쳤다. "네, 별거 아닐 거예요!!"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모니터의 MRI 영상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믿기기 않았다. 

"이건 10층 건물에서 떨어지거나, 달려오는 차량에 세게 부딪쳤을 때나 나올 만한 반응인데..' 

영상 속에 비친 그의 골반을 보니 대퇴골을 감싸고 있는 납작한 골반이 헝겊이 찢겨 나가듯이 절반이나 뜯겨 휘어진 철판처럼 자리를 벗어나 있었다. 단지 달리기를 하다 살짝 넘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수 있는 건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우선 입원부터 하고 내일 아침에 외과 선생님과 어떻게 할지 논의를 해봐야겠어요."

추석 연휴로 인해 아침 일찍 외과 선생님께 영상을 보내 수술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해 입원 수속을 밟았다. 마음의 준비를 할 틈 없이 급속도로 바뀌어가는 상황과 입장으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수술 안 해도 된다고 하실 거야. 치료로 가능하다고 하길 바라자."

아파하다 겨우 잠든 그를 보며 수술할 정도는 아니길 기도할 뿐이었다. 자정이 넘어 깜깜한 병실은 마음을 붙일 수 없이 철창 속 같이 차갑고 낯설었기에, 창가 넘어 보이는 눈부신 네온사인을 보며 빨리 어둠이 걷히길 바랄 뿐이었다. 밝은 아침이 오면 죽은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갑갑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다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그 시간이 오길 어둠과 함께 발버둥 쳤다.      


조금 더디었지만 새벽의 아침은 다시 돌아왔고 그녀의 숨통을 쥐고 있었던 숨 막혔던 병실에서 빠져나와 낯선 거리를 향했다. 서둘러 집으로 가 그에게 필요할 만한 물건들을 챙겼다. 익숙한 물건들이 늘 그랬듯 그 자리에 놓여 있었고 여전히 그곳에는 그의 일상과 시간이 흐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곳의 공기는 주인을 잃어버린 공간처럼 일상의 허리가 댕강 잘린 것처럼 그렇게 비워져 있었다. 한바탕 사건이 지나간 흔적은 잠시 떠난 주인의 온기를 기다리 듯 쓸쓸했다.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지워진 듯한 새벽의 텅 빈 거리가 참으로 슬프게도 고요하고 적막하다.      


병원에 도착하니 그에게 원무과에서 호출이 왔다고 했다. 이 병원에서는 그에게 필요한 수술을 할 수 있는 장비가 없다는 것이었고 결국은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 병원에서 할 수 없는 복잡한 수술이다 보니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음이 더욱 불안해졌다. 이렇게 아파하는데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조차 찾지 못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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