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oonface Mar 22. 2021

10월은 그렇게 간다_13

13. 흔들려도 사랑이다.

지하철 플랫폼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결혼 후를 상상해 본다. 빠르면 일 년, 아이가 생기면 걷기 힘든 그를 대신해 아기 가방과 아기를 혼자 안고 다닐 걸 생각하니 그 삶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프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욕심인 걸까. 이기적인 생각인 걸까.'


그와의 만남을 시작하며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결혼과 연애는 별개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꿉장난처럼 결혼 속 설렘의 상상 속에서도, 가족이라면 당연히 함께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 또한 짐작하기에 그의 갑작스런 사고는 그녀를 더욱 진지하게 만들었다. 현실이란 저울에 그를 놓고 세상에 이리저리 재고 있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진실됨'을 반문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 복잡한 마음을 털어내려 그녀는 가스레인지에 물을 얹. 랜 자취로 라면이 지긋지긋하고 맛이 없지만,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 이거라도 먹을 수밖에. 그러고 보니 그가 참 대단하다 싶다. 매번 그는 어떻게 그런 요리를 배웠는지 싶도록 뚝딱하고 해냈는데. 그런 그가 없는 주방 빈 냄비 라면만 끓여낼 뿐이다. 


가까워진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신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에 잡히는 그의 신장 수치는 불쑥불쑥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그와의 마음의 거리 앞에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그를 대하고 있음이 가식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모른척하려 해도 '혹시나'라는 불안이 그녀의 마음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스스로 잠재우기란 쉽지 않았다.

 

좋아할 줄만 알았지 남녀 사이의 '찐 사랑'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녀에게 사랑은 막연한 느낌과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그녀는 가난하고 싶지 않고 힘들게 살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나 그렇듯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 일어난 그의 사고는, 자신의 진심마저 란스러웠던 그녀에게 '찐 사랑'무엇인지 하길 원하는 신의 도전처럼 느껴졌다. 신은 결코 인간의 삶을 두고 도박이나 하는 잔인한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누군가를 상하게까지 하며 이 만남을 돌이키려 하거나, 한 사람의 인생을 위해 다른 누군가만을 희생시키거나 구원하는 분도 아니라 생각했다. 신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의 시간이 과연 그와 그녀에게 어떤 시간인 건지. 


어떻게 해도 정리되지 않는 현실의 간격을 안고 집에 들어온 그녀에게 마음이 물었다.

'너는 네가 아파도 그것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원했던 거 아니었니..?'


아프다는 이유로 사랑받을 대상이 되지 못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격마저 박탈당해야 한다는 것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자신이 그런 잔인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어떤 희생보다 오직 그 사람만을 원하는 한 사람에 대한 진심인 '진정한 사랑'은, 세속의 편안함을 바라는 그녀에겐 턱없이 부족한 정의일 뿐인가 보다.


병실에 누워 책을 보고 있는 그가 불편해 보여 목 뒤를 받쳐 주기 위해 수납함에 넣어둔 이불을 꺼냈다.

"왜? 집에 가려고?"

"응 집에 갈래." 아쉬워하는 그의 마음에 그녀는 장난기가 발동해 거짓으로 받아쳤다.

"왜 또~" 그가 읽던 책을 접고 그녀의 손을 잡는다.

그녀는 무심한 듯 이불을 접어 불편해 보이는 그의 뒷머리를 받쳐주었다.


"내가 갈까 봐서?"

 그녀가 갈까 봐 신경 쓰는 그가 왜 이렇게 안쓰럽게 느껴지는 건지. 그녀의 반응 하나하나에 그가 영향을 받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나 그녀 자신이 한결같이 잔잔한 그의 마음을 볼모로 자신의 불안정한 사랑을 확인하고자 흐뜨러트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의 두발에 하얀 운동화를 신겨 목발 연습을 하기로 했다. 목발을 짚는 게 힘든지 휴게실 의자에 앉아 물을 들이킨다. 한 바퀴 더 돌자는 그녀의 말에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던 그가 잠시 뒤 목발을 짚고 일어난다.

"왜? 들어가게?"

"한 바퀴 더 돌자며~"

앞장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그 사람이기 때문에'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녀.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그들 모두 자신의 존재가 소중한 의미가 되는 그런 '사랑'을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10월의 어느 오후 그를 따라다녔던 그림자처럼, 오늘도 그녀는 그의 그림자가 되어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잘하네. 역시 잘해~ 어제보다 한 바퀴 더 걸었어!"

  

(10월은 그렇게 간다 시리즈 끝.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10월은 그렇게 간다_1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