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안식년
어제 세비야 숙소에 도착해서 카르푸 가는 길에 봐 둔 카페에 왔다. 마드리드에서 관광가이드가 말하길 식당 바닥에 이쑤시개나 냅킨이 많이 떨어져 있다면 그 집은 맛집이라 했었다. 골목 안에 있는 이 카페가 딱 그랬다. 관광객들보다 이 지역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카페 콘 레체를 한 잔 주문했더니 여긴 물도 한 잔 같이 준다??? 커피가 다른 곳보다 쓴맛이 훨씬 강했다. 그래서 물까지 딸려 나온 모양이다.
천천히, 천천히 느린 여행을 하려는데 도시는 자꾸 우는 애처럼 보챈다. 빨리 하지 않으면 숙박비가 올라가고 교통비가 올라가고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배낭 족에게 속도전을 요구한다. 천천히 음미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버텨본다. 거대한 중력에 저항하듯 뒤로 버티며 끌려가기 싫은 것처럼. 결국 조금씩 나도 모르게 끌려감을 어쩔 수 없이 느끼지만.
이때 필요한 건 역시 초록 나무가 있는 숲이나 공원! 세비야에서 맨 처음 갈 곳으로 정한 곳이 마리아 루시아 공원이다. 천천히 낯선 도시의 이방인으로, 부유하는 노매드 유전자로 저항해보자.
흠, 오늘은 지도를 봐도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럴 땐 인간 GPS! 대성당을 지나 공원 가는 루트를 물어 물어 간다. 중간쯤에 트인 광장이 나타나고 ‘와’ 하고 입이 딱 벌어지고 고개는 계속해서 위로, 위로 쳐들 수밖에 없는 거대 스케일의 대성당과 첨탑 앞에서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중세 이후 시기를 그대로 간직한 듯 건물들이 여전히 빼곡하고 트램(노면 전차)과 마차가 지나는 길은 시간 여행이라도 온 듯, 유니버설 스튜디오 세트장에라도 들어온 느낌이다. 세비야를 보지 않고 스페인을 말하긴 어려울 듯하다. 콜럼버스의 항해 시대를 연 곳이니, 황금이 유입되고 최대 전성기의 절정이 이 도시를 가득 채웠을 듯하다. 사이즈에 기죽지 않으려 했지만. 인정! 스페인! 대단했다.
스페인 광장은 이미 꺾인 기를 다시 한번 끝장낼 정도로 장대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건물 곳곳은 물론 벤치까지 그림이 그려진 타일 장식이 하나하나 이채롭다. 작은 휴대폰 카메라로 아무리 멀리 물러서도 절대 다 담을 수 없는 스케일! 우리나라 유명 여배우가 CF를 찍기도 하고 몇몇 할리우드 영화의 배경으로도 나왔다는 이곳, 스페인이 자랑할 만하다. 광장을 둘러싼 아케이드 건물 아래 벽화처럼 스페인 각 지방의 주요 역사, 문화, 종교를 타일에 그려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스페인에서만 벌써 두 달이 넘어가니 내가 거쳐와서 이름이 익숙한 지역을 보면 더욱 반가웠다. 공원 바로 맞은편이라 먼저 들른 건데. 스페인 광장을 한 바퀴 도는 데도 한두 시간은 걸린 것 같다. 그만큼 크다. 스페인 사람들, 크기에 무슨 콤플렉스 있나?
건너편 마리아 루시아 공원으로 들어서자 엄청 배가 고파졌다.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노매드의 원칙, 먹고 움직인다! 공원 안에 카페나 매점이 없어서 일단 가까운 출구로 나가 먹을 만한 곳을 찾아보지만 카페 메뉴가 다 스페인어. 음식 주문하고 기다릴 인내심도 바닥이고. 앗싸! 다행히 가까이에 슈퍼마켓이 있다. 간단한 스낵과 빵을 사 들고 다시 공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소나기가 쏟아진다. 다행히 비를 피하기 위해 간이 카페의 처마 아래로 들어갔지만 한꺼번에 쏟아부을 듯 내리치는 비는 안까지 기어코 들어온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거기서 rain show를 구경했나 보다. 돈 한 푼 안 내고 바람과 함께 먹구름 조명 아래 굵어졌다가, 어느덧 가늘어지는 비의 공연을 즐겼다. 바쁘지 않은 노매드에게 비는 피하면 될 뿐. 비는 시간이 다 된 공연처럼 끝이 나고 다시 공원 산책. 아메리카 정원이라 이름 지어진 곳에도 분수와 연못, 꽃밭들이 알록달록 만질만질한 타일 장식과 나무들 속에서 잘 어울렸다.
프랑스 극작가 조르주 비제가 쓴 <카르멘>의 여주인공이 다녔다는 왕립 담배공장이 공원 건너편이었다. 카르멘은 담배공장 여공이었고 당연히 삼각관계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질투에 눈 먼 남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사랑은 죽음을 부르니 아이러니다. 그 죽음이 두 종류임에도-사랑해서 대신 죽거나 사랑 때문에 살해하거나-사랑이라는 이름의 힘은 생사를 가를 만큼 치명적이다. 옛 담배공장은 현재 세비야 대학이 됐다. 스페인의 젊은이들 이 바삐 들고난다. 이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까? 삼포세대? 헬 스페인? 그리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이진 않을 것 같다. 우리보다 경제 사정이 좋아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갈취한 황금 자원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성당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성당을 건축한 나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대대로 빚진 걸 알기나 할까? 입장료를 낼 때마다, 황금 제단을 볼 때마다 생각난다. 이슬람을 몰아내고 모스크를 부순 자리에 성당을 건축하면서 기독교의 왕은 더욱 크게, 더욱 고딕 스타일과 르네상스 양식을 고집하려 했나 보다. 하지만 성당 곳곳에는 여전히 이슬람식 연못과 회랑들이 남아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서 있는 곳은 역시 콜럼버스의 관을 네 명의 왕이 들고 있는 곳이었다.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게 아니라 도착한 게 맞다고 해야겠다. 대항해시대, 황금기를 선사한 콜럼버스는 죽어서 아메리카에 묻히고 싶어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 네 명 중 앞 쪽 두 사람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이와 세비야에 다시 오게 되고 왼발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세비야 성당의 하이라이트는 100여 미터 위 종탑, 히랄다 탑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다. 계단이 아니라 34까지 번호가 쓰인 경사로를 올라가서 세비야 도심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웅장한 세비야 대성당의 지붕들과 전체 건물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다.
역시, 세비야를 빼고, 세비야 대성당을 와 보지 않고 스페인에 대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