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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May 23. 2018

<케이크 메이커>, 그놈의 사랑이 뭐길래

이 글은 <케이크 메이커>의 스포가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달콤한 케이크 일색일 것만 같은 영화 제목과는 달리 케이크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케이크가 미웠다. 사람 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인 케이크가 없었다면,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는 토마스(팀 칼코프)와 그리고 이 모든 얽히고 설킨 관계의 주범인 케이크집 단골손님 오렌(로이 밀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무겁고도 힘겨운 이야기들이 시작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크레덴즈(토마스의 케이크 가게)에서 케이크를 먹고 있는 오웬. 이 둘은 사랑에 빠진다. <케이크 메이커> 스틸.


  버거운 스토리와는 달리,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이슬라엘과 독일 합작 건축회사에 다니는 오렌은 베를린 출장으로 매번 방문하는 토마스의 케이크가게 단골 손님이다. 이스라엘에 가족이 있는 오렌은 토마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베를린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던 가운데 오웬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토마스는 이스라엘, 그것도 오웬의 아내 아나트(사라 애들러)가 운영하는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게 된다. 홀로코스트와 유대인간의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하는 유대인 아나트는 독일인 토마스에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내준다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마치 과거 일본과 얽힌 비극적인 역사가 우리에게 상처를 냈듯이) 둘은 점차 서로의 일상에 서서히스며드면서 사랑에 빠진다.


  전 애인의 애인을 사랑하게 되는 꼴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관건은 아나트가 토마스에게 빠진 후에야 그의 정체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가게의 코셔* 인증을 포기할 정도로, 샤밧*을 가족 아닌 누군가에게 내줄 정도로 토마스를 사랑한 아나트에는 그 소식은 조용한 일상에 급작스럽게 찾아온 허리케인보다 영향력이 더 막대할 것이다. 죽은 오웬이 그녀를 떠나고 선택한 남자가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사랑하고 있는 토마스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녀가 느꼈을 참담함의 크기는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있을까. 지금 느끼는 감정의 정체를 알고 싶지도, 명명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없는 걸까'  


*코셔: 유대교 율법에 의해 식재료를 선정하고 조리 등의 과정에서엄격한 절차를 거친 음식으로, 코셔 인증 음식이 안전하고 깨끗한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샤밧: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 중 하나. 금요일 해질녘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해질녘까지 이르는 안식일로, 가족 친지와 같이 저녁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아나트에게 케이크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토마스. 둘은 알게 모르게 서로의 일상에 스며든다. <케이크 메이커> 스틸.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를 사랑할 수 없지만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단 한 사람과의 사랑을 위해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포기해야 했던 사람은, 그 한 사람이 한때 그토록 자신이 미워했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모든 연락을 거부한 채 그를 독일로 떠나보내고, 그후 일상으로 복귀해 애써 무덤덤한 척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하루 빨리 잊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를 잊는 최상의 방법은 구구구절절하게 연락을 잇는 것이 아닌, 단박에 내 일상 속에서 그를 제외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짧은 유통기한의 사랑을 정리하기에 충분한 시간, 삼 개월이 지났다. 아나트는 토마스의 케이크 가게에 찾아 간다. 그가 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힐끔거린다.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이다. 그녀는 그를 보기 위해 독일로 왔고, 그를 몰래 훔쳐볼 정도로 마음이 남아있다. 삼 개월 전에는 그를 사랑할 수 없는 수천 가지의 이유로 그녀를 단념시켰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 수천가지 이유들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와 함께한 추억을 지우며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왔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라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가 부재한 일상 속에 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뿐이다.


토마스가 아나트에게 해준 블랙포레스트 케이크. 독일의 전통 케이크로 유명하다. <케이크 메이커> 스틸.


  어떻게 보면 <케이크 메이커>는 사랑을 가장한 비인륜적인 영화일지도 모른다. 맞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둘의 사랑은 조금 특별한 영역인 듯하다. 영화를 보면 그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OO을 초월한' 사랑이 위대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까닭과 맞닿아있다. 답은 영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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