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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Jul 21. 2018

<빅식> 그가 짊어지고 있던 병은,

<빅식>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식당에서 파키스탄인 두 명이 말싸움이 붙었다. 언성은 점점 높아지는데. 일순간에 갑분싸된 식당. 사람들은 모두 식사를 멈추고 그들을 경계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대접에 너무나도 익숙한 듯 한 파키스타인은 말한다. "우린 테러리스트를 싫어해요!" 파키스탄 이민자 2세 쿠마일(쿠마일 난지아니)의 일상이다.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지만 영화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 2세 쿠마일의 정체성 갈등을 주력하여 담는다. 멜로물엔 사랑의 고난과 역경이 있어야 하는 법. 이 지점에서 <빅식>의 사랑의 역경이 시작된다.


매일 달라지는 정략결혼 배우자 후보. <빅식>의 스틸컷 


미국에 살지만 파키스탄 전통을 전적으로 따르는 이민자 집안의 둘째 아들 쿠마일. 굳이 파키스탄 여성과 정략결혼할 것을 강요하는 어머니는 매일 아리따운 파키스탄 여성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러나 이에 얼렁뚱땅 넘어가는 쿠마일. 그의 방구석 상자 속엔 그녀들이 자신을 소개하며 내보이는 독사진들이 쳐박혀있다. 흔한 이슬람 신도의 일과인 기도시간조차 유튜브 영상으로 때우는 그가 정략결혼 같은 걸 할 리가. 그는 낮에는 우버택시 운전사, 밤에는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서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청년이다. 좀 더 넓은 무대에서 유명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꿈을 꾸는.


진짜 사랑은 인연의 끈이 놓아지지 않는 법. <빅식>의 스틸컷


그런 그가 자유로운 영혼의 대학원생 에밀리(조 카잔)와 사랑에 빠진다. 코미디언의 독백으로만 가득한 공연 도중에 거침없이 환호를 보내는 에밀리. 아버지에게 야한 농담을 서스럼없이 하는 그녀는 자유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아쉽게도 서로가 바라보는 지향점이 같은 그들은, 원나잇으로 관계를 끝맺으려 하지만, 인연의 끈을 놓지못하고 그렇게 사랑을 이어간다. 영화는 초반부에 이 둘의 사랑의 성사를 일찍이 보여준다.


그러나 이내 쿠마일의 혼란이 드러나는 순간. 그러니까 에밀리는 쿠마일의 집에서 문제의 그 상자(외간 여자들의 사진이 담겨있는 상자란)를 발견한다. 쿠마일은 그간 미처 말하지 못한 사정에 대해 말문을 연다. "부모님은 정략결혼하길 원하셔. 이게 파키스탄 전통이고 나는 가족을 배신할 수 없어" 연애는 너랑 하고, 결혼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여자랑 할 수밖에 없어. 의 논리는 무엇. 그렇게 에밀리와 쿠마일은 이별한다. 쿠마일은 자유연애를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지만, 아직 '가족'이라는 거대한 그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당당하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사랑하는 가족은 반대한다. 참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만큼이나 가혹하지 않을까.


쿠마일. 에밀리 엄마. 에밀리 아빠. 세 사람의 불편한 동거 

재회의 순간은 더 가혹하다. 정체불명의 희귀병으로 에밀리는 혼수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둘은 재회한다. 그 계기로 쿠마일은 에밀리의 부모는 만나게 된다. '전 남친은 나쁜놈'이라 익히 들어온 에밀리 어머니로서는 쿠마일이 탐탁치 않다. 곁을 전혀 내주지 않지만, 점점 딸의 전 남친에게 마음을 열어보인다. 영화는 에밀리 부모님이 쿠마일과 함께 딸의 병상을 지키며 마음을 주는 과정과 함께, 쿠마일이 확실히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을 담는다.


첫째는 에밀리의 죽음 위기. 여느 멜로 영화가 그러하듯, 상대방이 위협에 처하면 트루 러브 감수성이 발동된다. 그녀의 병상은 물론이고, 에밀리가 위태로운 상황에 병원을 옮기려는 가족에 반대하며 절실히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다. 둘째는 에밀리 부모와의 기묘한 동거다. 편견 없이 사람 그 자체를 바라보는 그들. 쿠마일의 공연에서 그가 인종차별 모독을 당하자 바로 그녀만의 거침없는 방식으로 응수하는 에밀리의 엄마. 그들이 쿠마일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는 순간이다.  


직업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만큼 영화 속 쿠마일의 개그를 보는 재미도 있다. <빅식>의 스틸컷. 


결말은 해피엔딩이다(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실화다. 심지어 쿠마일은 배우이자 실화 속 실제 인물). 에밀리는 깨어나고, 쿠마일은 가족의 극심한 반대로 (강제로) 집을 나오게 된다. 처음엔 쿠마일에게 부정적이었던 에밀리와의 관계가 호전되고, 아메리칸 드림에 불과했던 스탠드업 코미디언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확장된다. 그리고 여전히 가족은 쿠마일의 아메리칸 스타일을 대놓고 반대하지만, 그에게 내줄 공간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 준비가 되면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나라의 옛 결혼 문화(정략 결혼/선)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문제의식에 대다수가 공감해 지금에서야 변했듯, 시간이 흐르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화도 어느새 같은 지점을 향해 바라볼 때  그제야 변하지 않을까.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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