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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Dec 05. 2019

#3. 다행이라는 생각

“선생님, 오늘도 감사해요”


어둑해진 이른 밤, 나의 서른 명의 학생들은 수업시작만큼이나 상기된 얼굴로 집으로 향한다. 모두들 책을 덮자마자 가방을 챙겨 빠르게 교실을 벗어나는 가운데 거동이 불편한 두어명의 학생들은 조금 느리게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그중 가장 늦게 짐을 챙기는 학생이 눈에 띈다. 받아쓰기를 채점해줄 때 이외에 말을 섞어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왁자지껄한 동년배에 비해 조용한 편인 그녀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매일같이 출석하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오늘따라 왠지 그녀와 보폭을 함께 하고 싶었다.      


어제보다 서늘해진 쌍문동. 약간 허리가 굽은 노인과 어깨가 굽은 20대 청년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시장 속을 걷는다. 시끌벅적한 시장과는 사뭇 다른 온도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노인이 먼저 말을 꺼낸다.

 "내가 허리가 아파가지구 집에서 여기 오는 데 한 시간이 걸려" 그녀의 첫마디가 반가운 나는 자동적으로 되묻는다. 아 멀리서 오세요?


“아니, 여기 근처에 사는데 걸어서 오면 한 시간 걸리는 거지”

아차, 싶었다. 생각보다 말부터 튀어나오는 버릇은 좀처럼 잘 고쳐지지 않는다. 멋쩍은 미소를 띄는 순간 다시 또 치고 들어오는 그녀의 한마디.   

“그래도, 여기 올 때는 우리 아들이 태워줘”      


그 말은 내 가슴에 정확하게 꽂혔다. 온가족이 나의 수업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사실은 교사 자격증도 없는 내게 부담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서른 명의 한 시간 반, 아니 왕복 두어 시간까지 합친 600분의 시간을 내서 오는 상황은 굉장한 압박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빠르게 지나가는 그들의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에 양질의 수업을 제공해야한다는 의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만해야하나 고민까지 들었던 것은 1년 동안 그들의 받아쓰기 실력이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첫 수업에 참석한 날, 인수인계를 해준 선생님은 어머님들이 너무 어려우면 싫어하신다고 깊게 파고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연이어 우연히 마주친 선생님들도 똑같이 말했다. 나도 그 방식을 답습했지만 매번 똑같은 것을 틀리며 “난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갈까”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들의 고민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졌다.     


화제를 돌려 오늘의 저녁 메뉴를 물었다. 아까 여기 오기 전에 해놓은 반찬해서 먹을 거야. 선생님도 집에서 잘 좀 챙겨먹어, 고향에 있는 엄마의 잔소리처럼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어머님의 목소리. 그 따뜻함에 어리광 부리듯 나는 한참 묵혀둔 이야기를 꺼낸다.


“교사로 일하는 선생님이 오면 어머님들도 더 좋은 수업 받을 수 있을 텐데..”

“아녀 우리는 지금도 좋아”

“똑똑한 선생님 오면 매일 틀리는 거 안 틀릴 수 있을 껄요?”

“어차피 똑같이 틀려~ 우리가 평상시에는 공부 할 시간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고민이 명쾌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공부시간 탓으로 돌리는 학생의 대답은 어딘가 모르게 안도감을 준다. 하고 나는 또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언젠가는 안 틀리겠지! 뭘 걱정해” 그녀의 배려 섞인 호탕함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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