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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 Mar 27. 2024

산며드는 두 번째 이야기

운악산

집에서 2시간 거리에 떨어진 직장을 다니면서 업무에 찌들다 보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새벽 일찍 서울을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몸을 힘들게 해야, 생각이 비워지면서 마음이 편해진다. 누군가와 함께 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혼자서 자연 속에서 쉬고 싶을 대도 있다. 그럴 때 망설이지 않고, 혼자 훌쩍 떠난다.


아침 7시경 사당역 6번 출구 앞은 관광버스들로 붐빈다. 행선지는 산. 산. 산이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나를 기다리는 버스를 찾아 타면, 행복한 기대감에 스며든다. 


산에 가는 이유를 붇는다면, 산이 나를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자연의 위대함을 품은 채, 항상 나를 반갑게 맞아주기 때문이다. 그 품을 너그러이 내어주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지만, 나와 함께 숨 쉬고, 내 속도에 맞춰 나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느리게 가도 재촉하지 않고, 빨리 간다고 나무라지도 않는다. 그저 한 번씩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본다. 어떤 감정을 전해도 고스란히 받아주고, 처음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좋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좋다. 


처음으로 혼자  떠난 운악산. 함한 바위산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정말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그래서인지 상반기 등산 계획 중인 산의 절반은 '악'자 돌림이다. 


입구 주차장에서 내리니, 하늘은 흐리고 안개가 낀 날씨였다. 한낮 최고 기온이 17도까지 오른다는 예보가 있어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한없이 좋기만 했다. 등산화 끈을 다시 한번 조여매고, 산행에 나섰다. 


이제 막 새순이 돋고 초록의 작은 잎들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추운 겨울을 나느라 고생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새 출발을 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땅이 느껴지고, 회색빛의 풍경이 바위색과 어우러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신비한 형상의 기암괴석들도 하나둘씩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나라로 떠난 선녀를 기다리다가 바위가 된 총각 설화가 전해지는 눈썹바위와 미륵바위, 병풍바위, 코끼리 바위까지 그 형상들도 각양각색이다. 한마디로 멋있다. 


암릉 구간에 로프를 잡고 오르면서 나의 가능성에 도전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급경사를 오르면서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또 능선을 타며 사진 찍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이 무색하게 한국사람 다 된 거 같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버스 타고 혼자 왔다는 말에 돌아가는 길이 멀 텐데 괜찮겠냐며 걱정해 주시기도 하신다. 다음 주에 관악산 등산 모임에 같이 동참하지 않겠냐고 제안하시기도 하신다모두 하나같이 산을 혼자 다니는 것이 대단하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전혀 그럴 것도 없다. 좋아서 오는 것을, 누가 말리겠는가. 사계절을 다 봐도, 같은 산이어도 늘 새로워서 좋은데. 좋으니까, 주말에도 꼭두새벽부터 눈이 떠지고, 멀리까지 가게 된다. 좋으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뭐든 마음이 가고 내가 좋으면, 하기 쉽다. 고로 쉽게 하고 싶으면, 좋은 이유를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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