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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Jan 14. 2024

방향을 잃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에세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고

24년 새해도 정신없기는 매한가지다. 피곤을 탓하며 제야의 종소리도 듣지 못했고, 일출을 구경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나마 근근히 지켜가고 있는 것은 독서. 아이들의 방학이라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온 책들이 집안에 가득하고, 덩달아 읽고 싶었던 책들도 하나씩 게임의 미션 해결하듯 읽기 시작했다.


사무실 동료가 선물받았다고 하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라는 책은 너튜브에서 영화평론가가 추천하는 책 리스트에 있었다. 이른 아침, 카페인을 필요로 하는 비루한 몸으로 커다란 머그잔을 들고 서성이다 동료의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발견했고, 흔쾌히 책을 빌려주었기에 책장을 여는 느낌은 카페인 여러 잔의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그런 느낌이었다.


돈을 버는 경제서적을 30권 읽어야 하는데... 라는 자조섞인 불만도 잠시. 나는 어느새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와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2009년  그 곳을 방문해본 것은 같다. 물론 그 안에서 어떤 예술품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지는 기억도 없고, 당연히 미술관 전시장의 경비원은 내 시야에도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서울의 미술관스러운 장소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이다. 반가사유상 두 점이 전시된 그 곳을 처음 방문한 것은 아이의 역사 수업 때문. 아이는 고대사 수업 및 체험을 하기 위해 선생님과 떠났고, 나는 조용히 사유의 방을 찾아 들어갔다. 어둠과 잔잔함이 감도는 그 곳에는 두 개의 반가사유상이 자리잡고 있다. 주말 오후시간이라 관람객들이 많았다. '아 멋지네'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같이 간 아이는 나가자고 한다.

역사수업이 4차례 있었기에 나는 갈 때마다 사유의 방에 들렀다. 3번째였던 거 같은데,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박물관엔 사람이 적었고, 사유의 방도 매우 한적했다. 반가사유상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관람객보다 많다라고 느꼈을 즈음 조용히 입구부터 다시 들어갔다. 작품의 멋짐이나 공예기술은 잘 모르기에 그냥 분위기에 압도되었던 듯 하다.


"무언가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애써 힘들이지 말아라. 그냥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받아들여라. 니가 무엇을 생각하든 지금 니 뜻대로 밀어붙여라."


두 분의 반가사유상이 말을거는 거 같았다. 여전히 지루하다는 아이를 데리고 몇 번은 더 그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 찾아보곤 했다.


잘 나가는 뉴요커로 승승장구하던 형의 죽음을 맞이하며 뉴요커의 삶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작가. 어려서부터 미술관과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형이 죽고 나서 어머니와 방문한 시카고의 미술관에서 자신의 공허함을 채워줄 '무언가'를 느끼고, 메트로폴리탄 경비원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미술관을 방문하는 나같은 관람객들은 작품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 안되지만 일과가 전시장을 지키는 경비원들은 메트의 예술품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10년동안 메트에 근무하며 그는 삶과 죽음, 예술에 대한 멋지고 우아한 경험들을 전해준다. 메트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내가 다시금 메트에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뉴욕 매츠 야구모자를 쓰고, 고등학교 이름이 새겨진 후드티를 입고 오는 가족들, 혼자 그림그릴 도구를 가져와 그림 앞에 앉아 경건하게 대하는 사람들. 뉴욕에서 모나리자를 찾으며 뉴욕을 빠르게 관광하는 사람들까지... 메트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온다. 경비원으로 가장 곤란한 순간들은 사람들이 자꾸 선을 넘어 조각상이나 그림을 만질 때라고 하니, 새삼 나는 미술관에서 어땠나 싶다.


"나무바닥의 12시간 근무는 대리석 8시간과 같아."라는 선배의 조언처럼 경비원들은 늘 서서 예술작품들과 관람객들을 지켜본다. 순번제로 경비를 해야 하는 예술작품들이 바뀌니 자연스레 작품에 관심이 생길 법도 하지만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작가처럼 작품들을 찾았을까 싶기도 하다.



10년의 메트 근무를 마치며, 작가는 그 기간동안 가족도 생기고 아이도 2명이나 생긴다. 그리고 나은 생계(?)를 위해 여행가이드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작가가 전하는 미술관에서 가져야 할 우리의 태도가 퍽 마음에 들어 기록에 남겨본다.


가능하면 미술관이 조용한 아침에 오세요. 그리고 처음에는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마세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면 눈을 크게 뜨고 끈기를 가지고 전체적인 존재감과 완전함뿐 아니라 상세한 디테일을 발견할 만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세요. 감각되는 것들을 묘사할 말을 찾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거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어쩌면 그 침묵과 정적 속에서 범상치 않은 것 혹은 예상치 못했던 것을 경험하는 행운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술품의 제작자, 문화, 의도된 의미에 관해 알아낼 수 있는 건 모두 알아내세요. 그것은 보통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중략)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와 다름없이 오류투성이인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메트입니다. (중략) 메트에서 애정하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배울 점이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될 작품은 또 어떤 것인지 살핀 다음 무엇인가를 품고 바깥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품고 나간 것은 기존의 생각에 쉽게 들어맞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아 당신을 조금 변화시킬 것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다시 가보고 싶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이 정도 생각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된 것만 같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기록에 남겨보는 작은 습관들처럼 말이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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