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 못해도 좋으니 일어나기만 해.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의 기준보다 늦었던 우리의 만남과 결혼.
달콤한 어떤 말로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기보다 적절한 순간에 필요한 말들로 서로의 마음을 채워주었던
노력이 있었기에 결혼 생각이 없던 우리는 서로의 배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짝꿍은 나에게 한 번도 거짓말을 하거나 빈 말로 호감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고, 날 선 나의 모습에도
늘 따뜻함으로 안정시켜 주던 사람이었다.
어떤 날은 빈 말처럼 하던 말도 못 지키면 사과하던 사람.
루틴과 계획에 어긋남을 불편해하던 나였기에 본인과의 다름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 나의 성향을 맞춰주기 위함이었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이것만은 꼭 지켜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 한 적 있다.
1. 나는 짝꿍에게 : 지나가며 하는 말이라도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 줘.
2. 짝꿍은 나에게 :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나한테 꼭 말하고 같이 해결하자.
해석에 따라서 굉장히 쉽기도 하고 어려울 수도 있는 우리의 약속이었다.
생각해 보면 굉장히 쉬운 것 같으면서 쉽지 않은 미션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서로가 어긴 적은 없다. 아니 어길 수가 없었다.
저 한 가지가 서로에게 유일하게 바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린 타인에게 각자의 이야기를 잘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역할과 책임이라는 무게에 진솔한 모습들을 감추고 살아야 했다.
서로의 대나무숲이 되어 누군가에게 해 줄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무겁고 힘든 일상이지만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고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가며 제2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톡으로 나누는 대화와 얼굴을 보며 나누던 대화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마음들까지 읽어내는 능력도 상승했다. 일과 중 주고받는 메시지 한 줄에 집으로 달려와 위로해 주며 마음의 울타리가 되어가던 순간들은 지금 생각해도 꿈을 꾼 것 같다.
나의 일상은 정말 꿈이었을까?
삶은 정말 일장춘몽인 것일까?
불안정하던 나의 마음과 채우지 못했던 어린아이와 같은 어리광을 개그와 위트로 녹여내던 사람은 내가 바라던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다. 사소한 것이었지만 나에겐 상대와 맺는 가장 깊은 애정의 뿌리였다.
그 뿌리가 튼튼하게 내려질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애쓰는 짝꿍은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즐거운 일에도, 기분이 좋지 않던 울적한 날에도, 깊은 대화가 필요한 날에도 짝꿍이 만들어주던 음식과 술 한 잔이면 세상 근심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하지만 사고 후, 내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아픔을 겪으면서 나는 누구에게도 진짜 위로를 받지 못했다.
내 세상의 뿌리였던 엄마마저도 내 곁을 떠나면서 세상에 혼자 남겨진 마음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받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변에 감사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가족과 타인들이 주는 위로는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이 투사되어 나에게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하던 순간들도 많았다.
매 순간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았고, 그럴수록 마음의 무거움은 배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들 앞에서 무력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럴 때면 짝꿍이 누워있는 옆자리에 혼자 웃고 울며 떠들고 나면
기분은 한결 낫다. 처음 중환자실에서 나왔을 때에도 내 목소리에 움직임을 보였었기에, 나의 목소리와 말에도 유의미한 표정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3년이 지나온 시간은 우리의 보이지 않는 소통 시간이 되어주고 있다. 나와 있을 때의 모습밖에 모르지만 옆 자리 보호자 언니가 그랬다.
환자가 반응하는 것이 정말 다르다고..
오늘은 일과 내내 울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거두고 하루 종일 누군가에게 늘어놓을 공간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우리의 흔적을 찾아본다.
"네가 힘들 때 평생 옆에서 술친구가 되어 줄게."
짝꿍이 가장 많이, 또는 자주 했던 이 약속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아니다.
"약속 지키지 못해도 좋으니 일어나기만 해."
퇴근 후 병원에 가서 이야기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