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맞는 네 번째 결혼기념일

가장 행복한 날이 가장 슬픈 날.

by 분홍공기

30대의 마지막을 달릴 즈음 짝꿍을 만나, 결혼이라는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우연히 함께 한 자리에서 나눈 대화들을 시작으로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첫 눈에 반하지도 무언가에 꽂히지도 않은 알맞은 호감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대화로 시작된 출발은 그것을 계기로 평생을 약속하게 되었다.


연애의 시점부터 결혼까지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모든 일상에 누군가가 함께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든 짝꿍의 자리는 너무 컸다.

특별한 것들을 하지 않아도 그냥 괜찮은 시간들이 내 인생을 채우게 될 줄 몰랐다.

부모님께도 받아보지 못했던 편안함과 즐거움으로 물들고 있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님의 부재로 심리적 가장이 되어 누군가에게 힘들다는 내색 없이

자기의 삶을 하나씩 일구어가며 열심히 살아온 사람. 결혼을 약속하고 미래에 대한 다짐은

하나였다.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평범한 일상을 즐겁게 살아보자는 것.

하지만 그 평범함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결혼 후 1년 6개월만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린 결혼기념일


첫 번째 결혼기념일.

결혼서약서를 직접 썼던 우리였기에 그 약속을 다시 읽으며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근사한 곳에 가지 않아도, 비싼 음식이 없어도 함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결혼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병상에서 누워있는 남편에게 결혼기념일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나 혼자 집에서 맞이했다.

나에겐 생일보다 결혼기념일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같이 준비했던 소중한 모든 것들의 의미가 옅여진 것 같음이다.

매 순간의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서 그 무게가 버거웠던 것일까?

말도 안되는 이유들을 하나씩 붙이며 슬픔을 이해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시간이다.


결혼기념일 꽃다발


최소 의식 상태라는 말은 살아 있음과 부재 사이의 애매한 경계에 우리를 현재에 세워둔다.
떠나지 않았지만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새로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짝꿍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모르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 그만 두어도 아무도 욕할 사람 없어”

정말이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저 말을 했다.
그게 두려웠으면 4년이 가까운 시간을 어떻게 지나올 수 있었을까,


단지 살아 있음과 함께 했던 삶은 다르다는 걸, 함께 웃고 울며 모든 순간을 약속하던 그 사람이
지금의 짝꿍과 겹치지 않는다는 걸 말로 꺼내면 너무 잔인해질까 봐.

결혼은 둘이서 시작했지만 유지는 혼자서도 해야 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오롯이 내가 선택했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우리가 선택했던 삶, 서로의 울타리가 되겠다고 썼던 그 문장들이
사고 하나로 무효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적어도 지금은,

짝꿍이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다섯 번째를 상상하지 않기로 한다. 열 번째를 약속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나는 오늘을 산다.
오늘 하루,
짝꿍의 아내로서 흔들리면서도 버텨낸 이 하루를 조용히 기념한다.

언젠가 이 글을 당신이 읽을 수 있는 날이 오든 오지 않든
나는 계속 써 내려갈 것이다.
우리의 삶은 멈춘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전 01화슬픔을 소화한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