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이고, 나는 나다.
사랑하던 사람들이 예고 없이 내 곁을 떠나는 일은 갓, 마흔이 된 나에게 너무나 가혹한 경험이었다.
이번 생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부부인연과 이번 생에 엄마와 딸로 40년 간 함께 했던 모녀인연.
한 해 동안 두 관계와 동시에 단절된 현실을 마주한 나는 3년이 지나면서 여전히 내 자리에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슬픔을 소화하다고 했지만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슬픈 장면이 아니면서 별 것 아닌 상황에서 요즘 말로 저항 없이 터져 나오는 슬픔과 설움들이 올라오면 멈출 수가 없을 때도 종종 있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모든 것들이 집착되어 있는 것 같다. 흔히 알고 있는 부정적인 집착이 아니라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과 에너지까지 붙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가깝다’에 의미를 두고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로 정의 내리며 상대와 무한한 연결을 만들어낸다. 연결이 깊고 짙을수록 그만큼 단절되거나 끊어내기도 쉽지 않다. 그럴 때 해야 할 일은 '의도적 노력'이다.
의도하지 않았고 너무나도 슬펐고 한 없이 가혹한 현실을 살면 살아진다고 했던가, 살아지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는 가벼워져야 했고 얕아져야 했다. 폭풍 같은 감정이 몰아치기도 하고 미친년처럼 널뛰는 마음 상태를 바라보고 인정하면서 하나씩 감정을 만나주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비워냈던 시간들이 3년이 지나서야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선명함으로 다가왔다. 바로 정신적 거리 두기였다.
아픈 짝꿍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내가 너 꼭 일으킬 거야.'라고 혼잣말을 반복했다. 그땐 정말 내 안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마음들이 커지면서 책임이라는 단어 안에 나를 가두었다. 내 안에 익숙한 나의 패턴이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짝꿍을 돌보면서 점점 무거워져 가는 에너지들이 감당되지 않던 어느 날, 왜 힘든지 나에게 물었다.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하면서 부부라는 인연으로 감히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려 했던 내가 있었다. 결혼을 약속하면서도 나누지 않았던 '책임'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상대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던져 놓고 혼자 허우적 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러다간 서로가 서로를 파멸시킬 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을 마주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 후 책임이라는 무거움을 내려놓고, 최선이라는 가벼움을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짝꿍과 함께 지낼 수 있다.
서로를 향해 있던 관계는 사고 후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주체가 되어야 했고, 짝꿍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힘든 순간에 나는 점점 작아졌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괜찮지 않았고, 이해한다고 했지만 소진되어 갔다.
그 안에는 나는 좋은 아내이고 싶고, 성숙한 사람이고 싶고, 이겨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역할 안에서 나의 자리는 점점 작아지면서 하나씩 잃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내 자리를 잃어가는 모든 영향은 다 짝꿍에게
미칠 수밖에 없었기에 우린 공존할 수가 없었다. 일방적인 관계는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내 안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역할들에 묶어두지 않았다.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 힘들다고 인정하는 것, 혼자만의 충만한 시간을 허락하는 것.
조금씩 나는 나를 비워내는 대신 나를 남기기로 했다.
우리는 집착된 관계 안에서 단절을 생각하지 않고 영원을 꿈꾼다.
영원히 내 옆에 존재할 거라고 믿는 당연함이 있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은 변하고, 상황은 무너지고, 느닷없이 다른 국면이 찾아온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다는 진리는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은 고통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니 내가 경험하고 비슷한 상황 안에서 타인을 보면 그때라도 깨달으면 정말 다행이다.
나는 한동안 '영원'이라는 단어 안에서 세상을 원망했다. 하지만 세상을 원망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저 간단한 진리를 너무 당연히 믿은 나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수도 없이 만났던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의 근거를 찾아보았다. 바로 착각이었다. 착각이 깨어진 자리는 생각보다 아팠다. 하지만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나는 일어날 수 있었고 내 인생 앞으로 걸어 나갈 용기가 생겼다.
관계 안에서 영원에 집착되지 않고 오늘의 나의 진심에 집착되기로 마음먹는다.
짝꿍과 오늘 하루 무탈하게 잘 지내는 것만이 지금 나를 멋지게 만드는 일이다.
신기하게도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하자 숨이 쉬어지면서 에너지가 통하게 되었다.
짝꿍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고, 내 삶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상대와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와 나의 자리를 존중해 주는 일이었다.
사랑은 서로에게 집착되는 일이 아니라 각자를 존중하는 거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거리는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기도로, 때로는 침묵으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어디로 가게 될지 언제까지 함께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쉽게 단언하지도 결론 낼 수도 없는
내일 앞에서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충분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신적 거리 두기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관계 안에서 슬프지 않기 위한 선택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어떠한 해석 안에서도 우리가 괜찮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짝꿍은 지금 내 옆에 살아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다. 그런 너와 나의 거리가 존중되기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