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몸에 흔적을 남긴다.

내 슬픔은 내가 알아주기

by 분홍공기

사람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동물이다.

사람이기에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특권이지만, 이것에 함몰되어 있거나 빠져나오지 못하면

삶 전체가 고통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감정은 생명과 같아서 그것을 흐르게 하면 우리 인생도 잘 흘러갈 수 있지만

몇 년간 무겁고 어두운 감정을 마주하는 환경에 자주 노출될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나의 경우 몇 년간 지속적으로 너무 큰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마음의 고통을 마주하며 내 인생을

부정하고 회피하고 극단적인 생각으로 몰아갔다. 다행히 글을 쓰며 스스로 내 인생을 구할 수 있었다.


짝꿍이 사고가 나고 지금까지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매 순간 무너지는 마음들을 만나야 했던 시간은

살면서 가장 큰 슬픔과 고통이었던 것 같다. 현재도 진행 중이고 짝꿍을 만나러 병원을 갈 때마다 아픈 환자들과 만나는 환경이지만 나의 슬픔을 정면으로 느끼고 소화하고 나서야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슬픔만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만들었고, 그 안에서 다른 감정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슬픔과 반대되는 감정들을 만들어보기로 다짐을 했다.


KakaoTalk_20260227_092551119.jpg 짝꿍이 찍은 겨울의 덕유산


가장 먼저 가장 쉽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면 좋겠지만 2년 넘게 24시간 돌봄 생활의 결과 내 몸은 무리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움직여주고 집 앞에 산책을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상이었다.

슬픔은 보이지 않지만, 몸은 그것을 숨기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자주 왼쪽 어깨와 목 그리고 허리까지 통증이 있음을 알았고 직장생활과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하면서

단순히 치료를 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리적 치료를 병행했다. 하지만 치료하는 순간뿐이었고

생활을 똑같이 이어졌다.


주변에서 물으면,

“괜찮아. 늘 아팠어서 이제 안 아프면 더 이상해."

라는 말로 상황을 넘겼지만 그럴수록 몸에서 주는 아우성들은 커져만 갔다.

생각해 보면 감정이 지나간 자리마다 몸은 조용히 표시를 남겼다.


가슴은 이유 없이 답답해졌고, 목은 자주 잠겼고, 밤이 되면 심장은 과하게 또렷해졌다.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 그곳에 쌓인 것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감정을 생각으로만 다뤘다. 이해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고 의미를 붙이면 정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감정은 논리가 아니라 감각으로 남는다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짝꿍과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그의 물리적 몸의 상태는 느리게 회복되고 있고, 나는 나의 속도대로 살아야 한다.

출근을 하고, 짝꿍을 돌보고,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의 시간은 ‘앞으로’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감정의 흔적을 치유해주지 않으면 몸은 자꾸 ‘그날’로 돌아간다.

응급실에서의 불안한 기운과 출처 모를 기계음 그리고 짝꿍의 온기 잃은 눈빛의 감촉을 떠오르게 한다.


KakaoTalk_20260227_092551119_01.jpg 짝꿍이 찍은 밤의 벚꽃


어느 날 문득 물리적 치료를 그만두고, 스스로 그 흔적들을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슬픈 일이 있으니 즐거움은 없다고 생각한 나의 마음에 반기를 들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의 언어로 되살아난 감정을 나약함과 불행으로 정의 내리지 않기로 했다.

감정을 밀어내면 몸이 대신 붙잡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한 울음은 두통이 되고, 참아낸 분노는 턱을 굳게 만들고,

설명되지 않은 불안은 심장을 빠르게 뛴다.


몸은 거짓말을 못 한다.
몸은 언제나 정직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몸의 신호를 꾸짖지 않기로 했다.


어깨가 뻐근한 날은
“오늘은 마음이 무겁구나.”
숨이 얕아진 날은
“오늘은 불안했구나.”

그렇게 해석하면서 내 감정을 내가 조금씩 알아주기 시작했다.

감정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그저 인정해 주는 것.

내 슬픔을 내가 먼저 알아주는 일.

아이들에게 내밀고 짝꿍을 돌보던 그 손을 나에게 내밀어주었다.


짝꿍과 나의 삶의 속도를 다르게 바라본다.

자신의 삶의 경계 안에서 살기 위해 애쓰고 있고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다름을 인정하자 몸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싸우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 강해지기보다 솔직해지기로 했다.

괜찮지 않은 날에는 어깨를 감싸 안고 말한다.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어.”

이렇게 인정하고 내가 알아주기 시작하자, 무엇이든 할 용기가 생긴다.


KakaoTalk_20260227_092551119_02.jpg



감정은 몸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상처이기도 하지만 살아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몸을 통해 나를 읽는다. 그리고 조용히, 나에게 허락한다.

아직 아픈 나를. 여전히 살아가려는 나를.

내 슬픔을 내가 끝까지 알아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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