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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Feb 21. 2023

#2. 너의 모든 것이 처음이라

[언제나 바로 너!]

 첫 아이는 예정일을 5일 넘기고 태어났다. 예정일이 다가와도 아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시댁에서는 하루에 두세 번씩 전화를 하며 걱정과 궁금함을 전하셨다. 주말부부라 출산예정일을 앞두고는 친정에서 보내고 있었기에 친정 부모님과 여름밤 공원산책과 주말엔 남편과 쇼핑몰을 8시간씩 걸으며 아이가 나오길 기다렸다. 출산전날 아침 8시 이슬이 보였고 오후시간부터는 일정한 간격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남편에게 서둘러 와 달라는 연락을 하고 진통이 덜할 때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진통의 간격이 짧아진 걸 체크한 엄마가 “이제는 병원으로 가도 될 것 같다”하여 병원으로 이동했다. 저녁 8시 병원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양수가 터졌고 내진으로 3cm가 열렸음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병원이 아닌 동해 외할머니 집에서 할머니 손에 출산했었다. 남편은 진행되는 상황을 중간중간 엄마에게 알렸고 나는 태어나 세상 처음으로 최고의 고통을 맛봤다.        

 첫 아이의 출산영상을 카메라에 담아준 친정엄마. 2018년 7월 26일 새벽 2시 16분. 가족분만실 밖에서 흔들리는 카메라 속에 담긴 목소리들이 그날의 우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거의 마지막 진통으로 힘들어하던 내 신음소리와 남편의 응원소리 후 들리는 아이의 첫 울음소리 그 뒤에 바로 이어지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심하게 흔들리던 엄마의 목소리. 밖에서 마음 졸이며 출산의 과정을 분만실 밖으로 흘러나오는 소리만을 들으며 지켜보고 기다렸을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나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을 친정엄마. 엄마와 나 그리고 우리 아가 이렇게 3대 완전체의 첫 만남의 순간을 담아준 영상을 종종 꺼내 본다. 내 눈물샘을 자극하는 포인트는 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아닌 숨소리에 가까운 엄마의 기도소리다.       

 첫 아이를 키우면서 친정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고 엄마가 되어보니 나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간 고팠던 애정을 내 아이를 키우며 다시금 채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40년 가까이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고 나를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엄마인데 육아 상담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엄마는 나에게 여전히 새로운 것들을 느끼고 있음이 나에게 전해지곤 한다.      


[언제나 바로 너!]     

너를 품에 안을 때마다

내 마음을 꼭 안아 주는 너      


 첫째 아이가 만 17개월이 되었을 즈음 “안아! 안아!” 하며 안아달라고 보채는 날이 많아졌다.

그만큼 "엄마! 뽀뽀", "사랑해요!" 하며 꽈~~ 악! 안아주는 횟수도 늘어났다. 가끔은 위로하듯 꽉 안겨 내 등을 토닥 토닥이곤 했다. 작고 작은 아이의 손에서 듬뿍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던 그때가 생각나게 하는 그림책 [언제나 바로 너!]는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순간 엄마가 느끼는 깨달음들을 시처럼 써 내려간 그림책이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대수롭지 않게 평소 그냥 흘려보냈던 사소한 것들에도 관심을 갖고 눈여겨보게 되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매일 겪는 일일드라마가 디즈니동화가 되기도 하고 아이를 통해 신세계를 만나기도 한다. 아이에게 엄마는 처음 마주하는 세상이지만 엄마에게 아이는 이전에 알고 지내던 것들에 ‘아이’라는 안경을 끼고 새로움을 다시금 부여하는 새로이 만나는 세상인 것 같다.      



너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를 부르는 너

너를 지켜줄 때마다 나를 더욱 강하게 하는 건 바로 너야!     


 몸이 좀 좋지 않을 때 친정엄마와 통화에 “엄마”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는 엄살 보탠 아픔을 고스란히 흘려보내지만 아이가 나를 부르는 “엄마”에 담긴 목소리에는 어디서 나오는 힘인지 반나절 앓아누워있던 내 몸을 일으켜 세우게 하는 힘이 있어 아이가 엄마를 강하게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육아는 그동안 잘 몰랐던 진짜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고 나의 인내와 한계점을 알게 하며 진정한 성인으로 다시금 설 수 있게 하는 과정인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잘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를 더 알아가며 괴로운 순간도 있고 놀라운 때도 있다. 아이를 키우며 마주하는 어린 시절 상처로 미처 다 자라지 못한 내 안에 내면아이와 아이에게 성인인 엄마로 다가가야 하는 그 지점에서 충돌이 생길 때 이 충돌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며 처음 마주하는 세상과 다시금 새로움을 부여하는 세상이 만나 서로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매일매일이 거울을 바라보며 나를 밀착 탐구하는 시간인 것이다. 한동안은 아이를 낳고 나를 잃었다는 생각에 한없이 우울해 진적도 있다. 그런데 돌아보니 세상 그 어떤 관계와도 이렇게 까지 나의 민낯을 쌩 노출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면서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에 나의 바닥까지 드러낼 일이 없었고 적당히 ‘나는 괜찮은 사람’으로 어느 정도 포장도 해가며 지낸 것 같은데 아이를 키우면서는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으로 ‘내 안에 이런 모습까지 있었다고?’ 싶을 정도의 낯선 내 모습을 마주 할 때가 종종 있다. 처음 이런 감정들이 밀려왔을 때는 죄책감과 한없이 낮아지는 자존감에 너무 괴로웠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생긴다는 것은 나를 그만큼 알게 되는 시간이고 그 시간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 감정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엄마’로 하루하루 더 강해질 수 있게 하는 아이들의 존재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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