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무드 Oct 19. 2022

육아동반자 당근마켓

한국에 와서 당근마켓을 아주 제대로 즐기고 있다. 와서 힙시트 아기띠를 오천원, 만원 주고  개를 샀고 아기띠워머도 오천원 주고 하나 샀다. 카시트와 소서는 무료로 나눔받았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사천원주고 품이 넉넉한 패딩을 샀는데 아기를 안은 상태로 아기까지 감싸안을  있어서 정말 좋다. 나한테 있던 겉싸개와 바운서는 나눔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줬다. 아마 가기 전에 작아진 아기 옷이나 요람같은 것들도 당근으로 처분할  같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왈라폽이라는 중고거래 어플을 잘 쓰긴 했는데, 당근처럼은 잘 못 썼다. 가장 큰 이유가 가격! 왈라폽에서는 나눔이라는 것은 없고 값을 스스로 매겨 파는 것인데 당근에 비하면 중고가가 꽤 높게 형성되어 있다. 내가 거기서 산 범보의자는 16유로로 이만원이 좀 넘는 가격이었는데 몇 명이 쓴건지 꽤 낡아있다. 그래도 삼십유로대에 구할 것을 싸게 산 편이었는데 당근에서는 나눔도 많고 오천원, 만원으로 훨씬 더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몇 가지가 떠오른다. 먼저 ‘버리는 비용’의 유무차이가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소서같은 부피가 큰 장난감을 버리려면 주민센터에서 스티커를 받아서 버리든, 재활용한다고 천으로 된 부분과 플라스틱 부분, 철제부분을 분리해서 내놔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은 일이다. 바르셀로나는 쓰레기 종량제도 안 하고 분리수거도 종이,플라스틱,유리,음식물 네가지밖에 없고 딱히 대형폐기물 버리는 비용도 없으니 집에 있는 무언가를 내다 버리는 것에 부담이 없다.



그러다 보니 바르셀로나에서 철지난 육아용품을 처분하는 사람들은 ‘돈으로 바꾼다’라는 목적없이는 사진을 찍고 시간과 장소 약속을 잡아 만나는 것이 훨씬 귀찮은 일이겠다. 이게 시장가가 높아지는 이유일 것 같다. 반면 한국에서는 애를 보면서 이 물건을 분해해서 플라스틱이니 잡비닐이니 철제니 재활용이 안 되는 천이니 구분하고 있을 바에 누가 이걸 통째로 가져가고 만원이라도 받으면 그게 나은 것이다.



둘째는 신뢰의 정도다. 사회적으로 ‘타인이 내 물건을 훔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도가 훨씬 높다보니 문고리 거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내 집앞을 지나는 사람이(이웃이) 내가 내놓은 물건을 허락없이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 물건을 수거한 구매자가 입금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니 번거롭게 시간맞춰 나가지 않아도 물건을 팔 수 있다. 내가 팔고자 하는 물건을 현관문 고리에 걸어 두고 너 편할 때 가져가고 알아서 입금하여라 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이게 가능하겠느냐? 절대. 일단 현관문 밖을 나선 물건은 무엇이든 내 것이 아니다. 또 누가 안 만진다고 해도 내 맘대로 물건을 둬서도 안 된다. 현관문 밖은 내 집이 아니다. 이웃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현관문 고리에 작은 봉투라도 걸어두면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비춰진다. 또 그렇게 물건을 수거해가는 사람은 입금하지 않을 것이다. 에이 그래도 지새끼 장난감 사가고 5유로 같은 푼돈을 떼먹겠느냐? 그렇다. 절대 입금하지 않을 것이다.



또 떠오르는 이유는 동지애다. 한국에 와서 느끼는 것인데 유독 애를 둔 부모들간의 눈빛이 끈끈하다. ‘그래 나 네 맘 안다’ 같은 눈이다. 쇼핑몰이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아리아 또래의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과 눈이 마주치면 서로 주고받는 그 묘한 눈빛이 있다. 나도 받고 보낸다. ‘힘내라 짜식’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낯선이와 인사하지 않는 한국인이지만 유독 애만 있으면 몇개월이냐 잘도잔다 걷느냐 기느냐 밥은 잘 먹느냐 대화가 이어지고 파리한 저 여자의 눈에서 초췌한 나를 보고 막 그런다. 그냥 기본 정서가 서로를 응원하는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서도 공원이나 바에서 다른 부모를 만나면 인사도 하고 서로 아이들 보면서 저기 친구있네~ 하는 것은 같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다. 그냥 사회활동, 사교적 대화 정도이지, 이런… 묘한 분위기는 못 느껴봤다. 이런 서로가 서로를 안쓰럽게 보는 분위기 (나쁘게 말하면 육아난이도가 헬인 사회)에서 내가 쓴 이 꿀템이 다른 엄마에게 밥먹을 시간을 줄 수 있다면 삼천원에 가져가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피규어가격이 생각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떠오른 가설이다. 지장난감을 파는 마음과 애장난감을 파는 마음.. 비교할 수 없다. ‘이놈의 뽀로로라디오 노래 너무 지겨워 제발 가져가버려’, 혹은 ‘이것만 쥐어주면 응가를 혼자 눌 수 있습니다’ 같은 마음은 피규어판매자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아! 하나 더 떠올랐다. 이건 당근으로 물건을 받아보면서 느낀 것인데 물건들을 정말 깨끗하게 쓴다. 애가 쓰던 장난감인데 크레파스칠하나 없고 붙은 스티커하나 없는 것에 놀랐다. 아기옷은 하나같이 깨끗하고 비누냄새가 난다. 물건을 관리해가면서 쓴 것이 티가 난다. 특히 팔기 전에 세탁/새척해 놓는 것. 바르셀로나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곧 팔거니까 마지막으로 쓰고 (세척없이)통에 넣는 것이 기본생각이다. 또 애초에 아이들이 물건이나 옷을 깨끗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건 육아방식의 차이겠다.



가기 전에 더 당근을 열심히 해야겠다. 아직 나는 아기띠워머를 하나 더 사고싶다. 내것은 이미 하나 샀지만 이건 스페인에 없는 물건이니 친구네 아기도 하나 갖다주려한다. 꼬꼬맘도 하나 사보고싶다. 구스파파를 너무 좋아하는 내새끼에게 닭도 오리도 보여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도리도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