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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쌍 Mar 16. 2018

봄, 청견의 맛

소소한 제주 시골일상 #5

마지막으로 실내 난방을 켰던 게 지난주였던가? 그사이 잠깐 꽃샘추위에 몸이 움츠러들긴 했지만, 날이 따스해진 건 확실하다. 외투를 걸치지 않고 강아지들 산책을 시킬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서울에서 회사 다닐 때를 돌이켜보면 계절 변화를 실내 냉난방 기기의 작동으로 눈치챘던 것 같은데 시골의 계절 변화는 그런 기기의 작동보다도 더 직관적으로 몸에 와 닿는 느낌이다. 시골의 봄은 살갗에 닿는 햇볕이 스치는 바람이 풍기는 내음이 알려준다. 확실히 봄이 왔다.

계절이 바뀌면 포털 메인에는 경쟁적으로 제철음식 기사며 포스팅들이 노출된다. 도시에서는 특식 삼아 찾아 먹는 그런 음식들이 시골에서는 지금 너무 저렴하고 흔하기에 찾지 않아도 먹게 되는 음식이 된다. 지금 내 가살 고있는 안덕면에서는 쪽파, 브로콜리, 갓 같은 채소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밭길을 따라 산책하다가 조금만 눈을 열심히 굴리면 냉이와 달래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겨울옷을 넣고 봄옷을 꺼내 입는 듯이 봄을 맞은 땅은 키워낸 생명들을 사람들에게 주고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춘다.

시골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지난해와 올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 식구들이 관리해야 하는 귤밭(제주도에서는 귤농사를 과수원이라고 잘 부르지 않고 귤밭이라고 부른다.)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며 시골을 떠난 이래로 처갓집 식구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무상이나 다름없는 가격에 귤밭을 마을분들에게 맡겨두었었다. 우리 부부가 시골로 내려오고 또 가게를 쉬게 되고, 장모님과 큰 형님 처갓집 식구들이 여유가 생기면서 맡겨둔 귤밭을 찾아 우리가 지어보기로 했다. 열흘 전쯤 내가 잠에서 깨기도 전에 농협 직원 분들은 과수원 입구에 장모님이 주문하신 비료를 잔뜩 쌓아두고 갔다. 이틀 전에는 장모님, 큰 형님과 농기계 가게에 들러 제초제와 농약을 살포할 모터와 분사기 약 줄 100m를 구입했고 안덕농협에서 제초액과 기계유를 받아왔다.

다시 농사를 시작한다는 부담감에 장모님은 요즘 매일 엉덩이가 달싹달싹하신 모양이다. 제주시에서 버스로는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귤밭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오셔서 밭을 둘러보신다. 큰 형님은 벌써 트럭을 구해서 멀쩡한 승용차를 두고 트럭을 타고 다닌다. 이러니 우리 부부라고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우리도 강아지들을 데리고 잘 가지 않던 밭을 요즘은 둘러보러 가곤 한다.

이미 수확을 마치고 봄을 맞은 귤밭의 나무들은 낡은 옷을 벗듯 오래된 가지와 잎사귀를 털어내고 있다. 밭을 둘러보던 중 그런 감귤 나무 사이로 세 그루 정도 아직 열매를 다랑다랑 달고 있는 나무가 보였다. 만저보니 단단, 아내가 하나 까서 먹어보자고 하기에 하나 따서 까먹었더니 껍질은 몹시 두꺼웠지만 달기만 한 것도 아니고 시기만 한 것도 아닌 굉장히 매력적인 맛이났다.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들을 총동원해봐도 초보 시골인인 우리는 그 귤의 정채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무척 맛있기에 다음날 바구니와 가위를 들고 그 귤을 한 바구니 땄다. 귤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던 우리는 밭 가까이에 평생 시골에 살고 계신 친척댁에 들러 그 귤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친척분은 알고계신게 당연하다는 듯이 "청견"이라고 알려주셨다. 도시에서 대학나왔다고 똑똑하다는건 확실히 다 뻥이다.

집에 와 인터넷에 찾아보니 쳥견은 조생 귤에 오렌지를 교접해서 만든 귤보다는 오렌지에 가까운 품종이라고 나와있었다. 오렌지라면 역시 주스 아니던가. 오랜만에 창고에서 착즙기를 꺼냈다. 이 착즙기로 말하자면 물욕 없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구두쇠 우리 아버지가 터키 여행 도중 주스를 짜는 모습에 반해 구입한 뒤 남은 여행기간 동안 구박을 받으며 짐 어지고 다녔다는 전설의 기계이다. 

청견을 착즙해 만든 주스는 시판 주스와는 확실이 달랐다. 산뜻하고 풍미가 좋았다. 확실히 너무 따갑지 않은 조금은 폭신한 봄 햇살을 닮은 그런 맛이었다. 

그래 확실히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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