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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당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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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쌍 Feb 11. 2018

가게를 정리하며

음식점 영업일지#3

가게를 정리하려고 한다. 

손님이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망할 정도로 손님이 없는 것도 아니요, 당장 좋은 가격에 누가 들어오겠다고 비워달라는 것도 아니요, 다행히 가게가 내 건물에 있으니 맘씨 나쁜 주인이 세를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가게를 정리하고자 한다.


지금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잘 한 일이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나로서는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음식을 만들어 판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무리요, 한편으로는 무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를 연지 이 년 반이 조금 넘은 지금 이 시점에 돌이켜보면 나는'정해진 레시피대로 조립만 하면 되는 것이니 뭐가 문제이겠어?'라며  너무 어리석고 유약한 생각으로 요식업에 뛰어들었다는 회의감과 환멸감이 든다. 그 나이브함으로 여럿에게 실망을 몇몇에게는 상처를 주었고 나에게는 수치가 심어졌다. 그렇다고 가게를 운영했던 모든 시간들이 부정적으로 퇴색되어 버리게 두고 싶지는 않으나 이 결정을 곱십고 있는 지금 나는 어리석었던 나에 대한 반성만이 한가득이다. 

그때 그러지 말걸. 또 그때는 저렇게 했었어야 하는데...


어찌 되었던 아내와 나는 가게를 정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가게를 열고 싶다. 자조 섞인 우스개가 되어버렸지만, 아내와 연예시절에 내가 했던 식당이야말로 최고의 UX 디자인 산물이 아니냐던 말을 나는 아직도 믿는다. 아내는 술을 공부해보겠다고 한다. 며칠 전 우리는 도서관에 가서 술과 관련된 책들을 빌려왔다. 나는 음식을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려 한다. 몇몇은 그게 무슨 필요냐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당장은 조리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계량과 레시피, 내가 비웃었던 요리의 기본 중의 기본부터 다시 공부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집에서 먹는 음식들을 조금 더 신경 써서 조리해 보려 한다.


가게를 정리하기로 하니 당장의 걱정은 먹고사는 문제이다. 물론 가게를 운영할 때도 그리 넉넉하게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조금의 수입이라도 있었으니... 지출은 빤한데 수입이 없어지니 당장 걱정이 많다. 내가 공부를 하는 동안 아내는 일을 찾아서 해보겠다고 한다. 우리 부부에게 누가 누구를 책임져야 하느니 하는 성역할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소비와 관련해서 조금 더 어른스러워져야겠다는 생각 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믿는 것은 멀지 않은 미래 언젠가

세네 좌석의 닷지가 있고 4인용 테이블이 한 두어 개 있는 조그만 식당에서 난 내가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끼는 음식을 만들 것이고, 아내는 본인이 발굴해낸 맛있는 술과 그 술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거다. 우리가 근래에 즐겁게 흥얼거리는 음악이 공간에 흐르고, 따뜻한 조명 아래에는 우리 부부가 여행을 다니며 수집한 소품들이 진열돼있고, 그 공간 속 사람들은 연신 만족의 웃음을 짓는 그런 가게. 그런 가게를 제주의 시골 어딘가에서 꼭 오픈할 것이다. 아니 오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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